[낙남정맥 06] 산과 세상은 지척이더라 - 고성(固城)
1. 산행 개요
1) 일 시 : 2010년 6월 6일(일) 무박산행
2) 구 간 : 낙남정맥 제 6구간(발산재-깃대봉-필두산-봉광산-백운산-큰재), 도상 거리 20.6 Km
3) 시 간 : 08시간 50분(식사, 휴식 60분 포함)
4) 참 가 : 좋은 사람들 35인 (8인의 동행자 : *리, *원, *파, *산, 길*, *호, 제*, 은*)
2. 산행 후기
(1) 하늘의 푸른 먹물로 붓질하다
초록으로 물든 숲에서 오솔길을 유유자적 걷는 바램으로 오늘도 산으로 든다. 3주 만의 낙남 산행이다. 난마(亂麻)같은 도회의 삶에서 벗어나 무욕(無慾)의 숲을 벗하는 산행은 늘 기다려지는 일이다. 허식과 체면이 우선하는 아스팔트 위의 행보와 달리 숲길은 우리를 활보하게 한다. 그래서 수수한 마음으로 새벽의 산으로 드는 사람의 발길은 가볍다. 미명(微明)에 정신이 깨어있으니 더욱 그렇다.
세간의 일도 산길을 걷는 것처럼 물 흐르듯 하면 심신(心身)이 얼마나 자유로울까? 초입의 가파른 된비알에서 슬그머니 자신을 돌아본다. 자명종(自鳴鐘)에 몸은 깨어나 있지만 아직 마음이 쫓아가질 못한다. 발 아래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 산행이요, 스스로를 채근하는 수행(修行)이 곧 산행이다. 앞뒤의 랜턴 불빛에 의지해 깃대봉(520.6m)을 오르다가, 바위에 어깨 한 방 찧고 정신이 번쩍 든다.
날이 밝아지니 초하(初夏)의 산은 그 몸통이 짙푸르다. 누군가 그 풍경을 이렇게 글로 그렸다. "성성한 잎사귀를 매단 나무들이 만 개의 붓 터럭처럼 일어서 하늘에 고인 푸른 먹물을 찍어 허공에 붓질을 해댄다."고. 엊그제 수류화개(水流花開)하더니 산중에는 이미 푸름이 가득하다. 숲이 뿜는 청기(淸氣)에 진토(塵土)의 세인(世人)은 그저 감읍(感泣)할 따름이니, 여름 산의 진정한 운치는 이런 것이지 싶다.
성성하게 잎사귀를 매단 나무
(2) 구만(九巒)의 산과 들
깃대봉을 지나면 산길의 왼쪽은 고성군 구만면(九巒面)이다. 구만(九巒)은 아홉 개의 뫼(山)라는 뜻이라 여겨진다. 숲길에서 벗어나 잠시 전망 좋은 바위에 선다. 사방이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깊은 산중에 넓은 벌판이 보인다. 작은 평야라 해도 손색이 없다. 상세 지도를 꺼내어 살핀다. 화림, 주평, 저연, 용와, 광덕, 효락의 6개 마을이 있다. 오늘 낙남 길의 반(半)인 10Km가 구만의 경계를 걷는 산행이다.
구만(九巒)에서 산과 고개를 넘지 않는 유일한 출구는 남동 쪽 뿐이다. 그 지형이 마치 '굴안'처럼 생겼다. 깃대봉에서 용암산, 필두산, 봉광산을 거쳐 탕근재를 향해 걸으며 왼쪽 맞은편에서 구만을 감싸는 적석산, 깃대봉(또 다른), 범바위산, 시루봉을 바라보며 걷는다. 쓰러져 넘어진 나무들의 잔해가 종종 발길에 걸리지만 그것도 하나의 숲길이다. 한 생을 마감한 나무들이 흙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의 길이다.
구만은 산이 사방을 막아주고 그 가운데 넓은 벌판이 펼쳐졌으니 산중의 소국(小國)을 이루고도 남았으리라. 구중구곡(九重九谷)의 산골인양 보이지만 산중에 벌판이 넓으니, 두루 물산(物山)이 풍부하여 한바탕 사람 사는 세상을 꾸리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리라. 그 마을의 이름을 보라. 선동(仙洞)과 주천(酒泉)이 있고 용와(龍臥), 저연(苧蓮), 화림(華林), 광덕(廣德)이 있으니 그 이름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함이 충분하다.
구만의 벌판, 산중(山中)의 평야다
(3) 나무의 정결한 기(氣)를 받으며
구만(九巒)의 산줄기를 걸으며 산 아랫마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옛사람을 생각하다가 잠시 이성복 시인의 <산>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장 더러운 진창과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가장 정결한 나무들이 있다 세상에는 그것들이 모두 다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함께 있지 않아서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 그것들 사이에 찾아야 할 길이 있고 시간이 있다 - 이성복, <산>
'더러운 진창과 정결한 나무', 두 개의 끝이요 극단이다. 그 대칭적 모습이 바로 세상이다. 그러나 '(더러운) 진창'은 가깝고 '(정결한) 나무'는 멀어 가야야 할 길과 쏟아야 할 시간이 아득하다는 시적 은유(詩的 隱喩)이지 싶다. 산에 길이 있으니 산에서 (정결한) 나무를 만나 그 나무의 가르침을 쫓아 살아가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산을 가까이 하라는 전갈이다.
'산은 세속에 있지 않으나 세속을 씻어준다'고 했던가. 산은 육신의 피로함과 정신의 곤궁함을 덜어주는 좋은 벗이요, 활력을 되찾게 하는 특효약이다. 다만 마음만큼 그 산을 늘 가까이 두지 못하니, '산이 속을 떠난 게 아니라 속이 산을 떠날 뿐'이라는 말이 가슴에 닿는다. 묵묵히 숲길을 걷는다. 잠시 쉬었다 가라고 구만(九巒)이 손짓하는 듯하다. 내 다시 오리니, 구만아 잘 있거라.
정결한 나무, 여름 나뭇잎에도 붉음이 있다
(4) 산에는 소나무 울창하고 (滿山松林碧森森)
성지산 갈림길에서 장전(場田)고개로 향한다. 대가면 송계리(松溪里)와 학남산(鶴南山, 551m)를 바라보며 소나무 울창한 숲길을 혼자 걷는다. 송계(松溪)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알려진 곳이다. 사방이 울창한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맑은 시냇물 흘렀으니 이름 그대로 송계(松溪)였으리라. 송계리 고분(*)의 유흔에 따르면, 마을의 연원은 소가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싶다.
장전마을을 내려다보며 숲길을 걷는다. 옛사람은 '장전모연(場田暮烟)'이라 하여 장전마을의 저녁연기를 송호팔경(松湖八景)의 하나로 꼽았다는데, 장전고개 아랫마을의 당시 풍경을 잘 묘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일찍이 그림 그리는 재주를 갖지 못해 스스로를 한탄했는데, 장전모연(場田暮烟)의 풍경을 머릿속으로만 그릴 뿐이다.
학남산 아래 장전(場田)마을 저녁 되면 집집마다 엷은 연기 피어오르니 (鶴南山下有場田向夕家各起細烟)
추운 자 따뜻해지고 배고픈 자 배부르니 나는 여기에서 늘 불 피우리라 (寒者得溫飢者飽居人無復未炊烟)
장전고개로 내려서자 생각은 현실로 되돌아온다. 산 아래 송계리(松溪里)를 관통하여 통영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다. 이제 옛 송계(松溪)는 간 곳 없고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도 찾을 길 없으니, 옛사람이 즐기던 송계(松溪)의 운치는 통영-서울 고속도로를 타고 새 물결로 출렁인다. 굳이 세태의 변화를 아쉬워하랴마는 왠지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 것을 피할 수야 있겠는가.
백운산으로 향하는데 서서히 날씨는 더워지고 체력도 떨어져 간다.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잔 후유증이 나타난다. 백운산 된비알에서 제법 땀을 흘린다. 백운산이, 그 산의 오래된 나무들이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으려나 보다. 숨을 헉헉거리며 간신히 백운산 정상에 오른 후 숲길에 벌렁 누워버린다. 포도나무 님이 건네는 얼음냉수가 기력을 돋운다. 감사!
장전고개로 내려서는 길의 송림(松林)
(*) 송계리 고분(古墳) - 1971년 송계리의 삼국시대(추정) 고분에서 다수의 유물(고배高杯 2점, 장경호長頸壺 2점 등)이 발견됨. 동아대 소장.
(5) 산과 세상은 지척(咫尺)이었으니
정신을 차린 후 산과 고개와 마을이 이웃하는 백운산 자락을 살피다가 큰재로 향한다. 오늘 몇 개의 고개를 가로질렀을까? 그 이름을 부르고 숫자를 헤아리다가 어느새 길의 끝에 이르렀다. 발산재(2번국도)를 출발하여 선동치, 남성치, 담티재(1002지방도). 새터재, 신고개, 배치고개(1007지방도), 떡고개, 장전고개(1009지방도)를 건너 큰재에 이르렀으니 무려 열개가 넘는 고개를 가로질렀다.
고개는 '재'라 하기도 하고 더러는 '티'나 '치(峙)'라고 부르며 곧잘 '령(嶺)'이라 이름 한다. 그러나 오늘 걸은 산길에 령(嶺)이라 부르는 고개는 없었다. 그만큼 산이나 고개의 높이가 대단치 않음을 일러준다. 산 높이가 대체로 300m에서 500m를 아우르니 그 고개 또한 사람 사는 세상과 멀지 않았다. 고성을 통과하는 낙남의 산과 고개는 그렇게 올망졸망했다.
그러나 산이 높아야만 산이랴. 6월의 숲은 짙푸르고 향기가 넘쳤다. 초록을 품은 숲길은 피톤치드의 방향(芳香)이 충만했고, 숲을 가르는 고갯마루와도 포근히 동거(同居)하며 그윽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으레 산에서는 세속과 아스라해지길 꿈꾸지만 낙남의 산길은 세상과 지척이었다. 그렇게 산과 고개와 마을이 이웃하고 있었다. 이것도 하나의 산이요 어울림이리라.
산행을 앞둔 이틀간의 수면부족, 그리고 더운 날씨로 산행 후반에 다소 몸 고생을 했지만, 맑고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으로 돌아온다. 초록의 숲에 빠져 공룡나라와 소가야의 흔적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구간에서 달랠 수 있을지?
산과 고개와 마을이 이웃하는 낙남
2010년 6월 7일 새벽에
정결한 숲에서 도회로 돌아와
월파(달무리)
[추신] 이번 구간 그가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병문안하니 그의 표정이 밝다. 큰 수술 후의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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