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05] 정읍사(井邑詞)를 읊으며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11년 1월 23일(일), 무박산행
(2) 산행구간 : 호남 5구간, 구절재-고당산-개운치, 당초 계획했던 개운치-망대봉-두들재-추령 구간(8.2Km)은 추후 보충하기로 함
(3) 산행거리 : 11.7 Km(도상거리)
(4) 산행시간 : 6시간 50분
(5) 산행참가 : 좋은 사람들 26명 합동산행
- 9인의 동행자 : 성원, 오리,월파,정산,오언,지용,은영,성호,제용
2. 산행메모 : 정읍사(井邑詞)를 읊으며
(1) 달하 노피곰 도드샤
오늘은 내장산을 향해 정읍(井邑) 땅으로 깊숙이 발을 담갔다. 마루금은 정읍의 산외면, 칠보면을 거쳐 내장산 자락으로 이어졌다. 새벽하늘에 보름을 지난 달이 어렴풋이 보였다. 잠시 고등학교 고문(古文)시간으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 정읍사(井邑詞)를 읊조렸다. 40년 가까운 세월에도 아물아물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신통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엊그제의 일도 곧잘 잊어버리는 요즘에.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를 디디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소서 // 저자(시장)에 가 계신가요 진(위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 어디에 가 계신가요 해 저물까 두렵습니다." 행상(行商)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귀가를 소망하는 아내의 망부가(望夫歌)이다. 아내의 애틋한 정을 달을 통해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그 산하에 부부의 마음을 잇는 훤한 보름달이 떴으리라.
옛부터 애틋한 망부가(望夫歌)는 더러 있었다. 눌지왕의 아우를 구하러 왜국에 간 신라의 충신 박제상을 기다리다 죽은 그 아내의 '치술령곡(鵄述嶺曲)', 싸움터에 나가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고창 선운산에 올라 불렀다는 백제 여인의 '선운산가(禪雲山歌)'도 있었다. 모두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망부가였다. 부부(夫婦), 지아비와 지어미, 남편과 아내 .......
(2) 평생웬수
망부가(望夫歌)를 부르던 여인들 ...... 부부(夫婦)란 서로 어떤 존재일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부의 도(道)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다만 시류(時流)에 따라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은유와 반어가 내포한 은근한 해학 대신, 갈수록 직설과 타산의 외연에 익숙한 세태에 자연스레 적응해갈 뿐이다. 문득 황성희 시인의 시(詩) '부부'가 생각났다. 그 시를 처음 읽던 기억이 새롭다.
낱말을 설명해 맞추는 TV 노인 프로그램에서
'천생연분'을 설명해야 하는 할아버지
'여보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 손가락 넷을 펴 보이며 '아니, 네 글자'
'평생웬수'
노부부(老夫婦)의 '천생연분'과 '평생웬수', 시(詩)를 읽다가 한참 웃었다. 표현은 달라도 속마음은 하나일 게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그랬다. 그런데 이 시를 조금 더 읽으면 자못 숙연해진다. 시의 흐름은 'TV에 출연한 부부'에서 'TV를 보는 어머니'로 그 대상을 옮겨간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오랜 세월 홀로 지낸 어머니의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망부가(望夫歌)가 따로 없다. 하나의 반전(反轉)이다.
(TV를 보던) 어머니의 눈망울 속 가랑잎이 떨어져 내린다
충돌과 충돌의 포연 속에서 / 본능과 본능의 골짜구니 사이에서
힘겹게 꾸려온 나날의 시간들이/ 36.5 말의 체온 속에서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
'TV에 출연한 할머니'가 외치는 '평생웬수'보다 그 'TV를 보던 어머니'가 속으로 삼키는 '평생의 웬수'에 가슴은 더욱 애잔해진다. 사무치게 그리운 '평생의 웬수'라! 어머니의 속은 검정숯일 게다. 부부, 멀리 떨어져 망부가(望夫歌)를 부르는 것보다 살 붙이고 아웅다웅 다투며 지내는 '평생웬수'가 오히려 낫지 않은가! 거기에 한 표를 보태며, 개운치에서 일찍 산행을 접고 당당히(?) 집으로 전화를 한다.
"여보, 오늘 산행도 무사히(?) 잘 마쳤어요! 돌아가서 봐요!"
"녜, 그래요. 조심해서 와요. (평생웬수)"
<PS> 심한 적설(積雪)과 컨디션 부조로 일행 4명(오리,성원,월파,지용)은 개운치에서 중도 탈출했으나, 주력 부대 5명(정산,오언,은영,성호,제용)은 악전고투를 하며 당초 계획대로 추령까지 완주함. 그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뒷날 보충 산행시 자원봉사 하실거죠?
2011. 1. 23. (일)
호남의 산에서 돌아와
월파(月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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