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01) 3대가 쌓은 덕, 천왕봉의 일출

月波 2005. 6. 27. 23:17

[백두대간 종주기] : 1차 (천왕봉-세석)

1. 프로로그

백두대간이라.......
처음에는 그 이름부터 생경했으나, 이제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가슴떨리고 흥분된다. 내게 있어 대간종주의 첫걸음은 어쩌면 첫 풀코스완주에 도전하던 2002년 조선일보 춘천대회, 그 설레임을 능가한다. 내 발로 이 땅의 대간 마루금을 직접 밟으며 이 산야와 함께 호흡하는 일, 그리하여 내가 이 땅의 주인공임을 비로소 느껴가는 과정이리니........

지난 늦가을 [백두대간]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내내 가슴앓이를 해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갈망하게하고 대간종주에 집착하게 하는지 아직은 나 스스로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고, 하지않으면 마음의 병이라도 걸릴것 같았다. 다행히 오랜 산행경험을 가진 남 시탁님이 종주대장을 맡기로하고, 이미 대간종주의 경험을 가진 김 성의님과 김 현숙님이 리더로서 동참하고, 둘도 없는 친구 송 정산이 동행하기로 하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리저리 관련자료를 뒤적이고 주변에 자문을 구해 가슴앓이를 조금씩 치유하면서 첫 출발의 날을 기다린 셈이다.

백두대간 남녘땅 구간,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690Km를 3년여에 걸쳐 이렇게 걷고싶다. 내 발로 직접, 가슴을 활짝 열고, 눈을 뜨고, 열린 귀로...... 오감으로 느끼며 걸을 것이다. 시간과 주변을 조화롭게 다스리며 걸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일상사와 부딪힘이 없이 ......그리고 나 만의 의미를 찾아 볼 것이다. 숨 쉴 틈도 없이 앞만보고 달려온 길에서 한 걸음 살짝 비껴나,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싶다.


2. 중산리로 가는 길

2004년 1월 10일 밤 11시 5분. 강남마라톤클럽 본부 앞에서 드디어 첫 출발을 위한 시동을 건다.
강마의 이름으로 구성된 백두대간 종주팀, 그 첫 출정대원 31명을 태운 버스는 한밤을 거침없이 달려 서울을 떠난지 3시간여만에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의 단성 IC에 도착한다.
지리산 천왕봉을 최단시간에 오르는 기점인 중산리 초입이다. 고려조의 목화씨 밀수대장(?) 문익점과 조선조의 유학자 남명 조식, 현대사의 걸출한 선승 성철스님...... 이런 쟁쟁한 분들의 본향(本鄕)인 이 곳, 그들이 뿌린 인연의 깊이가 생생이 살아 숨쉬는 곳을 새벽바람을 가르며 달린다.

백두대간 종주의 첫 출발지인 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오르는 관문인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가 지척이다. 어둠 속에, 그기 두류동 계곡으로 내 몸과 마음이 빠져들고 있다. 이제 시작의 종이 울리는 것이다.


2004.1.11. 월파 by Casio Exlim S3


3. 천왕봉을 오르며

2004년 1월 11일 새벽 4시 20분, 천왕봉(1915m)을 향해 중산리에서 역사적(?) 첫 발을 내딛는다.
보름을 갓 지난 휘영청 밝은 달이 교교한 빛을 발하며 강마의 전사들이 내딛는 발걸음을 밝혀준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칼바위, 망바위, 로타리 산장, 법계사를 오른다. 개선문(1700m)을
지나 천왕샘을 오르니 어둠이 걷히고, 동녘하늘에는 일출을 준비하는 모습이 붉게, 붉게 물든다.

07시 10분, 드디어 천왕봉에 오르다. 뒷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진 천왕봉 표지석에 기념사진을 찍거나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정상은 발디딜 틈이 없다. 천왕봉의 일출은 흔히 3대의 덕을 쌓아야만이 볼 수 있다고들 한다. 오늘 언제나 후덕한 강마의 여러 멤버들 덕분에 지리 10경의 제1인 천왕봉의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을런지...... 그리하여 백두산까지 이어질 대간 종주길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더하고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을런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2004.1.11. 월파 by Casio Exlim S3


4. 대간길을 밝힌 천왕일출

7시 30분을 지나자 동쪽하늘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모두들 환호와 환성이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 3대에 걸친 적선(三代積善)이 필요하다 했던가?
오랜 선업을 쌓은 훌륭한 강마의 여러 님들 덕분에 나에게도 천왕일출(天王日出)의 장엄함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으니..... 오로지 감사할 따름이다'


2004.1.11. 월파 by Casio Exlim S3

함께 대간길에 나선 김 성의님의 생각을 되새겨본다.

" 언제 보아도 천왕봉의 일출은 천하에 압권이다. 혼백을 앗아가고 사바세계의 혼돈을 잊게 한다.
찌든 가슴 펴게 하여 잊었던 호연지기를 되살려 준다. 분별 심으로 피곤해진 영혼을 다스려서는 어미의 자궁에서 빠져 나올 그때의 순백으로 되돌려 놓는다. 피아를 떠나 우리를 찾게 하고 천지사방에 충만한 환희심을 펼쳐 놓으니 그곳 솟는 태양을 바라보는 그 자리, 지리산 천왕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허나 우리 강마의 백두대간 종주팀은 일출을 바라보며 천국만을 찾고자 천왕에 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 날부터 내 발로 걷고 내 가슴으로 느껴 내가 내 땅의 주인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백두대간 종주를 따라 길을 나선다는 것과 강남 마라톤 클럽의 무궁한 발전을 천왕신께 고하고 내쳐 대간의 마루금을 따라 백두산으로 길을 잡으려 천왕에 오를 따름이다. 그때 인연이 되어
일출을 만난다면 천왕신의 축복 속에서 대간의 종주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천왕신의 축복속에 일출을 맞이하고, 제상앞에 두손 모아 고사를 지내며 천왕신께 바램을 빈다. 우리가 무사히 대간종주를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 강마의 발전을 기원하며 ...... 이어서 김치와 치즈와 엘지를 번갈아 외치며 여러차례 기념사진을 찍고........ 드디어 천왕봉을 기점으로 대망의 대간종주 첫 발을 내 딛는다.

이렇게 강마의 백두대간 종주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되었다.

 

 

5. 천왕봉에서 꾸는 꿈

지난 여름 두차례에 걸친 지리산 종주산행에 이어 5개월만에 천왕봉에 다시 오르다. 백두대간 종주의 출발선에 선 것이다. 달리기의 출발선에 서서 늘 새로운 시작을 꿈꾸듯이, 나는 오늘 천왕봉의 정상에서 저 진부령까지, 아니 백두대간의 북쪽 끝 백두산까지 이어질 장정에서 이루고자하는 새로운 꿈을 꾼다.

천왕봉 출발에 앞서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본다. 가야산, 남해바다, 백운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이제 대간길을 따라 마루금을 밟게될 지리연봉들이 정겹게 줄지어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은 천왕봉에서 통천문,제석봉, 장터목, 연하봉을 거쳐 세석평원까지의 주능선을 종주한 후
거림골로 하산할 계획이다.



천왕봉을 내려서면서 강산도인의 산정무한 소요유(山情無限 逍遙遊)를 생각한다.
지난 여름 종주길에 보았던 그 팻말은 찾을 길이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푸른 산 흰 구름은 산객(山客)의 마음이요
바람의 물결은 산객(山客)의 발이로다
카메라 하나 딸랑 메고 천왕봉에 오르다
물따라 핀 꽃 향기 코끝을 때리고
산정(山頂)은 높아 운해(雲海)는 더욱 한가로운데
애석히도 오늘 다시 나 홀로 보는구나
무슨 일로 서풍은 불어 잠든 숲을 깨우고
한소리로 차가운 산새는 장천(長天)을 울며 나는가

장터목으로 하산하는 길은 곳곳에 미끄러운 빙판과 바위길이 가로막는다. 아이젠을 신발에 걸치니 한결 편하다. 곧바로 통천문을 내려선다. 속계로 내려서는 셈이다. 통천문을 오르면 그기가 선계(仙界)요,또한 통천을 이루었으니 천지가 발아래다. 천왕봉 일출을 보면 신선도 가슴을 쓸어내리고, 통천문을 내려가면 신선도 보통 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6. 제석봉에 흐르는 아픔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지난다. 탐욕에 눈먼 인간이 남긴 추한 모습이 불타고 남은 고사목에 아픈 상처로스며들어 있다. 제석봉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차마 눈뜨고 그대로 볼 수 없다. 뼈다귀처럼 앙상한 고사목이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한다. 고개돌려 내려온 천왕봉을 올려다본다. 그기 그 자리에 흔들림없이 우뚝 솟아 우매한 인간들을 준엄하게 꾸짖는 듯하다.



내 그리움 야윌 대로 야위어서 / 뼈로 남은 나무가 /
밤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 나는 보았다. /
밤마다 조금씩 손짓하는 소리를 / 나는 들었다. /
한 오십년 또는 오백년 / 노래로 살이 쩌 잘 살다가 /
어느 날 하루아침 / 불벼락 맞았는지 /
저절로 키기 커 무너지고 말았는지 ......... 이 성부 시집 <지리산>중 [고사목]에서

7. 양초의 화신

장터목 산장이다. 시설이 산행객에게 호사스러울 정도로 잘되어 있다.
규모가 꽤 크지만 천왕봉을 오르는 전초기지인지라 항상 등산객들로 붐빈다. 지난 8월의 마지막 주말, 하루밤 묵으며 천왕낙조(天王落照)와 천왕일출(天王日出)을 보던 그 때의 일이 떠오른다. 밤하늘에 뿌려져있는 수 많은 별을 헤아리며 다음 날의 천왕일출을 기다렸었지......
그리고 이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렸었지...... "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그 어딘가? 오늘 우리가 머물 곳은 그 어딘가? "

그 사이 식수를 보충하러 간 정산(正山 : 대간종주길에 함께 나선 친구, 송 영기님의 법명)을 기다리며 행동식으로 준비한 간식을 먹는다. 정산이 돌아오지 않는다. 역시 겨울 샘터의 식수량이 적은가 보다.
앞으로 종주길에 식수보충 계획을 꼼꼼히 따져야겠다는 생각이다. 30분이 지나서야 세개의 물통을 혼자서 들고 정산이 나타난다. 정산이야말로 제 몸을 녹여 세상을 깨끗이하는 양초의 화신이다.

장터목을 지나 지리10경중의 하나인 연하선경을 기대하며 연하봉을 오른다.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있어 발걸음이 한결 부드럽다. 이제서야 겨울산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 혹한과 폭설을 예상하고 준비한 산행장비가 무용지물이었는데 따뜻한 날씨속에 눈 길을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8. 연하선경을 그리며

연하봉이다. 준비한 디카로 연하선경을 여기저기 잡아본다. 그러나, 연하봉은 참 묘하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하고 카메라에 담긴 모습하고 판이하다. 마음에 흡족한 컷을 못잡고 아쉬워하다가 이내 마음을 비운다. 역시 안개비에 휩싸인 연하봉이 최고인가, 아니면 가을 날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구름 한 점 걸쳐있는 연하봉이 제일인가? 다시 연하봉을 찾아야겠다.



9. 촛대봉에서 보는 반야

연하봉에서 촛대봉 가는 길은 대부분 서북사면에 길이 있다. 따라서 잔설과 빙판길이 이어진다.
게다가 상당한 구간이 너덜길이다. 몇 번씩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아이젠에 힘을 빌린다.
오른쪽 아래 백무동 계곡을 굽어보면서 쉼없이 촛대봉을 오른다.

촛대봉에서는 중간그룹이 모여 긴 휴식을 갖는다. 후미를 기다리며 배낭속의 행동식을 꺼내 나눠 먹으며 지도를 꺼내 나침반을 들고 동서남북의 능선과 봉우리를 살핀다. 김 현숙님은 친절히 독도법을 가르쳐준다. 지도를 보고 여기저기 봉우리를 찾는 연습을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촛대봉에서는 저 멀리 노고단을 배경으로 반야봉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다. 반야봉! 그 후덕한 품새는 늘 어머님의 가슴과 같다. 지리산 종주능선 어디서든 반야봉은 쉽게 우리에게 다가오며 늘 지리연봉과 그 자락을 넉넉하게 감싸고 있다. 대간길 내내 마하반야바라밀을 암송하며 참 지혜를 깨치려는 화두를 놓지 말아야겠다. 이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9. 하산길의 거림골

촛대봉에서 세석평원은 지척이다. 겨울 세석은 왠지 허허롭다. 역시 세석은 철쭉이 평원을 뒤덮는 봄이 제철이다. 오늘 주능선 산행은 세석까지만 하고 거림골로 하산, 상경하기로 했다.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친 길에 좀더 걸어 벽소령까지 갔으면 하는 생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 먹는다. 3년여의 긴 시간 아닌가! 결코 서두르지 말고 이 땅의 산야를 좀 더 느끼며 여유를 갖자. 또한 이 때 아니면 언제 지리산 계곡 구석구석을 걸어볼 수 있겠는가!

세석에서 거림으로 하산하는 길은 오솔길과 능선, 너덜길이 반복되면서 곳곳에 곱게 자란 산죽(山竹)길을 따라 6Km의 계곡을 빠져나가는 여정이다. 산죽길을 지날 때는 지난 봄 백무동 삼정산 계곡에서 보았던 빨치산의 비트가 생각나 순간순간 섬�해진다.
내게 있어 항상 산은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힘들고 지루하다. 정상에 도전하는 길은 비록 몸이 고달퍼도 해야할 목표가 분명하기에 지루함을 모르나, 정상을 떠나 원래로 돌아가는 하산 길은 그 자체가 늘 허전하고 아쉽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정상에 오른는 길에 다시 나서는 것이지 싶다.

거림에 도착하니 김성의님이 먼저 도착해 밝은 미소로 맞아준다. 힘든 산행길의 피로가 한 순간에 씻어진다. 대간길을 함께할 든든한 동지가 있으니 다음 구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

[참고자료] : 백두대간 제 1소구간 종주기록

강남 마라톤 클럽의 백두대간 종주팀과 함께한 백두대간 제 1소구간 종주 기록

1. 일 시 : 2004.1.10.-1.11.

2. 구 간 : 제 1구간(지리산 구간)의 1소구간(중산리-천왕봉-장터목-세석)

3. 참 가 : 총 31명 (강마 회원 28명, 비회원 3명)
... 권오언,김성의,김우주,김영수,김영이,김윤표,김점숙,김춘자,김현숙,남시탁,박재상,박홍구,
... 박희용,박희춘,변주희,손영자,송영기,양영석,오영명,오영제,유난희,윤영옥,윤재용,이성원,
... 지용,최정미,홍명기,홍원의,오영명 부인,김성의 친구,김성의 아들

4. 산 행 : 중산리-법계사-천왕봉(1915m)-통천문-제석봉-장터목산장-연하봉(1730m)-촛대봉(1703m)-세석평전-거림

5. 거 리 : 도상거리 18.4Km (중산리-천왕봉 7.3Km, 천왕봉-세석 5.1Km, 세석-거림 6.0Km)

6. 소요시간 : 9시간 10분(중간그룹 기준, 천왕봉 해돋이 1시간, 촛대봉 독도법 해설 30분 포함 )
.. ............... 중간그룹 대비 선두는 약 1시간 먼저 거림 도착, 후미는 약 30분 늦게 도착

7. 산행일지 : 중간그룹 기준
...(1) 1월 10일 23:10 개포동 국민은행 앞 출발
...(2) 1월 11일
- 03:00 중산리 도착, 산행준비(조식)및 입산대기
- 04:20 중산리 출발
- 04:50 칼바위
- 05:40 망바위
- 05:55 로타리산장, 법계사
- 06:40 개선문(1700m)
- 07:10 천왕봉, 해돋이(지리10경중 제1경 천왕일출) 및 산제
- 08:25 천왕봉 출발
- 09:20 (통천문-제석봉)장터목 산장
- 09:50 연하봉(1730m, 지리10경중 제8경 연하선경)
- 10:50 촛대봉(1703m)도착, 간식및 독도법 교육(30분)
- 11:30 세석산장
- 12:10 샘터(찬물샘)
- 13:30 거림, 식사및 휴식
- 15:00 거림 출발
- 19:00 서울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