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0) 부처님 오신날의 속리(俗離)

月波 2005. 6. 30. 14:48

부처님 오신날의 속리(俗離) - 백두대간 20차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5년 5월 15일(당일산행) 09:08 - 18:05
(2) 산행구간 : 갈령(진입) - 갈령삼거리 - 늘재(20.6Km)
(3) 참가대원 : 20명
...... 대간팀: 권오언,김성호,박희용,손영자,송영기,오영제,이성원,정제용,홍명기,서종환,김길원
...... 산행팀: ,남시탁,김가연,김은진,김영이,권오성,오영명,이미옥,이두원,이수형
(4) 산행시간 : 9시간
...... 09:03 갈령 도착, 기념사진 촬영
...... 09:08 갈령 출발
...... 09:33 갈령삼거리
...... 09:43 형제봉
...... 10:18 피앗재
...... 10:57 703봉
...... 12:00 대목리 삼거리
...... 12:12 천황봉(1058m) - 30분휴식(중식)
...... 13:08 천황석문, 비로봉
...... 13:45 입석대
...... 14:03 신선대
...... 14:20 문장대 - 40분 휴식
...... 15:00 문장대 출발
...... 16:48 밤티재
...... 18:05 늘재
...... 19:01 늘재 출발
...... 21:33 서울 개포동 도착


2. 산행후기

(1) 속리(俗離)를 향해

백두대간 20차는 속리산 구간이다. 부처님 오신 날 이른 아침 속리산(俗離山)으로 향한다. 속리(俗離)라? 세속과 멀리 떨어진다는 얘기인가? 간밤의 늦은 잠자리를 털고 새벽길을 나서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지만 5월의 신록을 즐기며 걸을 대간길을 생각하니 이미 마음은 속리(俗離)다.

속리산 구간은 추풍령이후 1000m이하의 낮은 산을 오르내리며 세상 사는 모습을 즐기던 백두대간이 세상과의 거리를 점점 멀리하며 본격적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기 시작한다. 그래서 속리(俗離)인가?

지난 19차의 하산지점, 갈령이라 새긴 커다란 입석앞에서 한 컷하고 오늘 마루금 잇기의 시점(始点)인 갈령삼거리를 향해 산길을 오른다. 오늘은 20Km가 넘는 길을 걷는다, 그것도 암릉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신발끈을 고쳐맨다. 마음을 확실히 묶는 것이다. 그리고, 속리(俗離)를 하는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 "산은 세속을 여의치 않는데, 사람이 산을 여의려하는구나 (山非離俗 俗離山) "라고 시를 읊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발지취를 찾으려 속세를 떠난 승경(勝景)의 산, 속리산을 오르는지도 모를일이다.


갈령에서 속리산을 오르기에 앞서


(2) 천황봉의 일망무제(一望無際)

반바지 입고 등산하길 잘못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차라리 핫팬츠를 입을 걸...... 긴바지 입은 우리를 약올리는 정산의 농담이 싫지 않다.

형제봉(828m), 목을 축이고 잠시 쉬기에 좋다. 우리들 모두가 열렬히 "사랑하는 영자씨"가 싸온 �걀반숙은 입에 살살 녹는다. 흘린 땀이 녹음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 식는다. 제법 몸도 풀리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피앗재(639m)로 날아든 후미조의 무전, 형제봉 지나서 무덤이 있냐고? 형제봉에서의 후미조 알바, 형제봉에서 우회전해야하는데 직진하여 4개의 봉우리나 갔다가 되돌아 온다.

피앗재에서 서쪽으로는 만수동이다. 소위 10승지중의 하나다. 피난처요,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 산세와 계곡의 유장함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닐터인데, 생각같아서는 만수동 계곡물에 발담그고 한 여름을 보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667봉-700봉-703봉을 차례로 오른다.

대목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대간능선을 만나는 삼거리 근처에서 상오리에서 올라온 남대장 일행을 만나 함께 천황봉을 오른다. (대간을 걷느라 절승을 자랑하는 금란정과 장각폭포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천황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압권이다. 동서남북으로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진 산하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른다. 끝이 없이 펼쳐지는 풍광, 역시 이 맛이야!

 

천황봉 정상에서


(3) 신선대에는 신선이 없다?

천황봉은 백두대간에서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치는 곳이다. 천황봉 정상,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한강과 금강, 낙동강으로 나누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삼파수라고 부른단다. 낙남정맥의 시원인 지리산 영신봉, 호남금남정맥의 시점인 영취산과 함께 천황봉에 서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목요 야간산행을 하며 청계산에서 북한산까지 가는 길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다. 직선거리로는 20여Km에 불과하지만,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이치대로 물길을 건너지 않고 가는 길은 어디일까? 그 거리는 얼마나 될까? 신 산경표를 쓴 박성태씨의 계산대로라면 1096Km나 되는 거리이고, 그 길목에 여기 속리산 천황봉을 반드시 거쳐야한다. 백두대간을 끝내고 청계산에서 여기 천황봉까지 한남금북정맥을 한번 타볼까?

천황봉에서 일망무제(一望無際)를 즐긴 시간을 가슴에 쓸어담고 대간길을 재촉한다. 천황봉에서 문장대(文藏臺)로 이어지는 대간길은 곳곳에 펼쳐진 기암괴석이 시야를 즐겁게 한다. 천황석문, 비로봉, 입석대(立石臺), 신선대(神仙臺), 경업대, 청법대, 문수봉....... 속리산에 8석문, 8대, 8봉이 있다고 하니 언제 그기를 두루 걸어볼 수 있을까? 속리산을 부르는 이름도 8개라고 하니 8이라는 숫자와 속리산은 깊은 인연이 있나보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그런지 법주사를 찾았던 신도들의 산행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어린아이의 손목을 잡고 산행을 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세속에 때묻지 않는 천진스러움을 읽는다. 경업대를 지나 입석대에서 맑은 바람을 쐬며 지나온 천황봉을 되돌아본다. 카메라에 담기보다 그저 눈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새긴다.

신선대에는 신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저 산아래 법주사 사하촌의 모습이 산중 깊숙히 들어와 있는듯해 아쉽다. 매점에서 식수를 사서 보충하며 만난 아낙은 그저 "막걸리 있어요, 파전 있어요"를 외치며 손님 끌기에 여념이 없다.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지만 준비해간 방울토마토를 일행들과 나누어 먹으며 목마름을 달랜다.

신선대를 지나 문장대가는 길에서 우스개 소리로 어느 스님의 염불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사레가 걸려 재채기를 심하게 한다. 부처님 오신날, 경망스럽게 굴었다고 부처님한테 혼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고 법주사를 향해 합장한다. 정구업진언, 참회진언, 호신진언을 차례로 외며....... 그래도, 기회가 되면 맞은편 산에 크게 쓰여있는 "산불조심"을 거꾸로 읽고, "심조불산, 심조불산, 심조불산"이라 염불하던 스님이야기는 또 할것같다.


입석대에서 돌아본 비로봉과 천황봉


* 여덟개의 속리산 이름과 8석문 8대 8봉(八石門 八臺 八峰)

광명산(光明山), 지명산(智明山), 구봉산(九峰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소금강산(小金剛山), 자하산(紫霞山), 그리고 속리산이라는 산이름이 그렇고,
내(內)석문, 외(外)석문, 상환(上歡)석문, 상고(上庫)석문, 상고외(上庫外)석문, 비로(毘盧)석문, 금강(金剛)석문, 추래(墜來)석문의 여덟 석문이 그것이다.

8대란 문장대(文藏臺), 경업대(慶業臺), 배석대(拜石臺), 학소대(鶴巢臺), 은선대(隱仙臺), 봉황대(鳳凰臺), 산호대(珊瑚臺)를 말하며
8개 봉우리란 천황봉(天皇峰), 비로봉(毘盧峰),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 보현봉(普賢峰), 관음봉(觀音峰), 묘봉(妙峰), 수정봉(水晶峰)을 말한다.


가까이서 본 입석대


(4) 문장대에 올라

문장대에는 부처님 오신날 법주사를 찾았던 신도들과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다. 문장대에 올라 4방을 둘러보며 즐기는 조망은 과히 압권이다. 정상에서 먹는 간식맛도 일품이고......

문장대 표지석은 문장대의 의미를 새기기보다 문장대가 경상북도 상주 땅이라는 사실을 큼직하게 새겨놓고 있어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리산을 충북 보은 땅이라 생각하는데, 그 요지의 하나인 문장대는 행정구역상 경북 상주 땅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김성호님과 문장대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놓고 문장대에서 이어지는 대간길, 밤티재와 늘재를 찾아본다. 자세히 보니 문장대를 기점으로 대간 서쪽으로 다시 경북 상주 땅이 깊숙히 들어와 있다.

문장대를 내려서며 표지석 뒷면에 새겨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시를 발견하고 속으로 읊조려본다.
-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 산은 세상을 멀리하지 않는데 세상이 산을 멀리하는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

문장대를 배경으로 사진찍는 일에는 부부조, 홀아비조, 여자조 모두모두 나선다. 후미들과 합류하여 시간가는 줄 모른다. 힘든 산행이지만 모두 표정이 밝아 정신적 기쁨이 뇌리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대에서 바라 본 천황봉과 속리능선


(5) 밤티재로 내려서는 암릉

밤티재로 내려서는 길, 헬기장 근처에는 바리게이트가 쳐저있고 입산금지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어떡해야하나? 일단 흩어져있던 일행들을 모아 함께 금지된 길을 가기로 한다. 산불단속인지, 응급구조인지, 금지구역 산행자 정찰인지 불문명한 소방헬기가 상공을 날아다녀 한편으로 주눅이 들지만, 어찌하랴? 백두대간을 하는동안 금지된 길을 여러차례 통과해야 하니......(뒤에 알았지만 그날 문장대에서 장암리로 내려서는 길에 골절상을 입은 산행객이 있었다)

밤티재로 내려서는 길은 암벽 오르내리기, 암릉 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구간이다. 누군가 금지된 사랑이 더욱 짜릿하다했던가? 우리는 금지된 길을 외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암릉을 오르내리며 스릴의 극치를 맛본다. 오늘 이 구간의 짜릿함이 있었기에 우리의 백두대간 산행은 오래도록 기억이 남을 것이고, 정산의 얘기처럼 오늘 이 구간을 완주한 사람들만이 모여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으리라. 설악의 공룡능선이 부럽지 않으니......

개구멍, 참 그 이름이 사납다. 때로는 사람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 대간돌이들은 그 어느 누구도 거리낌없이 속리산이 빚어낸 암릉을 외줄타기하듯 오르내리며 여러개의 개구멍 통과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 성호님은 말한다. 누구나 고개숙여 통과할 수밖에 없는 허리꺽인 소나무 뒤의 입석이 우리 모두의 절을 받고 있다고....... 그래서 입석이 생물이 되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 누가 허리굽히기를 주저하랴?

이 성부 시인은 이 암릉을 걸으며 이렇게 노래했다.

어미 뱃속 밑 모를 깊이에서 / 허우적거리거나 / 비집고 나오는 것이 이런 몰골일지도 몰라
개구멍바위 나와보니 비로소 세상이다 / 누구도 함께 가지 못하는 어려운 길에
그것을 모른 채 첫 울음을 터뜨린다

파랗게 이끼를 뒤집어쓴 바위 봉우리들 / 쇳소리를 내며 솟아 나를 굽어본다
낯익은 세상이 이미 나를 가둔다 / 세상에서도 세상에 빠져 / 쩔쩔매는 나를 내가 본다


암릉을 오르내리다 바위에 헤딩을 하고 눈에 별이 총총해지는 사건을 마지막으로 입석바위에 도착하여 내려온 길을 되돌아 본다. 바위와 한바탕 내 왼쪽이마에는 피멍이 맺혀있단다. 그 정도로 다행이다. 이제 제법 편안한 흙길을 만나 편안히 길을 걷는다. 밤티재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자개와 그의 아들 견훤이 터잡고 살았던 곳, 견훤산성이 오른쪽 길로 이어지지만, 오로지 대간 마루금에 빠진 우리는 견훤산성으로 접어들 여유가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경북 상주 땅이 대간의 서쪽으로 깊숙히 침범하여 형세를 자랑하는 것도 그 옛날 후백제를 세웠던 풍운아(?) 견훤의 치적이려니 하며 길을 재촉한다. 탤런트 견미리는 견훤의 후손이겠지 하면서.......


문장대에서 밤티재로 내려서는 암릉, 입석바위에 선 홍명기, 손영자님


(6) 늘재에서 마시는 당귀 주(酒)

밤티재는 고개마루를 깍고 그 고도를 낮춰 포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상주가 고향인 성호님은 "여기서도 대간의 허리를 잘라버리는구나" 하면서 탄식한다. 포장공사로 허리를 잘라버린 밤티재에서 늘재로 이어지는 대간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공사인부들이 자상하게 대간길을 손짓을 해준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696봉,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한다. 마지막 고비, 마고다. 마산고등학교를 다닌 정산의 모교도 마고다. 그래서 정산은 마고를 즐겨 외치고, 진주고등학교를 다닌 나는 진짜 고비, 진고를 즐겨 외친다. 이것이 황악산을 오르던 그 고비, 고비에서 우리가 외치던 구호다. 나는 습관처럼 낮은 언덕을 달려서 오른다. 진짜 고비든 마지막 고비든 빡세게 땀흘리는 우리들에게 이미 696봉은 발아래에 있다.

696봉의 전망대에서 배낭을 푼다. 그 동안 아껴왔던 식수도, 간식도, 방울 토마토도 배낭에서 나온다. 목말라하던 일행이 한 입씩 나눠 먹는다. 이것이 산행의 묘미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배낭 깊숙히 넣어두었던 홍삼 절편을 꺼내 후미까지 나눠서 입에 씹으니 절로 힘이 솟는다.

이제 늘재를 향해 내리막길을 걸으면된다. 늘재에서 무전이 날아든다. 언제쯤 도착하냐고? 마루금따라 걷는 길이 끝이 보인다. 늘재에는 수령이 320년도 넘었다는 엄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반기며 오늘 대간길의 종착지를 알린다.

물론 먼저 도착한 일행이 준비한 김영이표 김치찌개에 말아먹는 햇반은 더할 나위없는 꿀맛이요, 오영명님 부부가 준비한 당귀 소주는 오늘 하루의 피로를 말끔이 씻게한다. 오 형, 나 그 당귀주에 1박 2일동안 피클처럼 절여져 있었다오. 책임지시유 !!!!!!


늘재의 320년 되었다는 엄나무 앞에서


다음에 이어갈 늘재에서의 백두대간을 그리며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입으로 베어먹는다. 청화산 농장의 토마토는 다음 달에도 있을까? 점점 멀어지는 늘재를 뒤로하며 서울로 향하는 차창너머로 오버랩되는 대간길의 [고개]를 생각한다.

고개는 낮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이끈다
처음부터 제머리를 치켜드는 법이 없다
내 걸음걸이 더디게 되면서부터
자꾸만 산 뒤편으로 저를 감춘다
땀방울 하나씩 흙에 떨어질 때마다
고개는 성깔을 드러내어 된비알을 만든다
버려야 할 것들 모두 버린 다음에라야
나도 마루에 올라 가쁜 숨 몰아쉰다

고개가 높은 곳에서 길을 잡아 나를 끌어내린다
저어 아래 저를 꿈틀거리면서 금새 사라진다
살아오고 살아갈 길이 저런 숨바꼭질을 닮았는지
아니면 큰 파도 일렁임인지 알 수 없다
편안함이란 잠시 힘을 빼고 내려가는 것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할 산 쳐다보인다
낮은 길이 좌우로 퍼질러 앉아서
자동차들도 넘나들거나 쉬어 가는 곳이 되었다

------------- 이 성부 시인의 <내가 걷는 백두대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