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21) 청화산인(靑華山人)을 생각하며

月波 2005. 7. 21. 23:46

청화산인(靑華山人)을 생각하며(백두대간 21차)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5년 6월 19일(당일산행) 09:02 - 16:57
 (2) 산행구간 : 늘재-청화산-조항산-고모치-밀재-대야산-곰넘이봉-버리미기재(17.5Km)
 (3) 참가대원 : 30명
 (4) 산행시간 : 7시간 55분

 


2. 산행후기

 

 (1) 청화산(靑華山)을 오르며

 

오늘 백두대간 길은 청화산(984m), 조항산(961.2m), 대야산(930.7m) 정상을 차례로 오르내리는 마루금 17.5Km다. 그동안 즈려밟아온 상주땅을 뒤로하고 문경땅으로 접어든다.

 

늘재에는 오래된 서낭당 가까이에 새롭게 지은 성황당 하나가 있다. 백두대간상에 놓인 유일한 성황당이다. 그 유래비를 보면 옛사람들의 토속신앙과 범접할 수 없는 마음을 다소나마 읽을 수 있다.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위엄도 있다.


조금이라도 경박한 마음을 가졌다면 청화산을 오르는 된비알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땀속에  모든 것을 파묻는 것이 상례다. 다시 길을 돌아보니  320년 되었다는 엄나무와 그 옆, 오래된 서낭당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자 오늘의 대간길을 걸어보자.

 


늘재의 백두대간 성황당 유래비앞에서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뿌연 안개속에 6월의 햇살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다. 바람 한 점 없이 더운 기운만이 흐르고, 발아래 산하를 조망하는 재미를 찾을 수 없다. 기대했던 속리산 암릉의 모습이나 쌍룡계곡을 내려다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 아래 어디쯤 빨리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원적사(圓寂寺)가 비학승천혈(飛鶴昇天穴)에 자리하고 있을텐데 ......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혈(穴)도, 오래 전부터 전설적 이상향이라 알려진 청화산 동남쪽의 우복동(牛腹洞)도 옅은 안개에 파묻혀 그 언저리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택리지를 쓴 청화산인(靑華山人) 이중환을 생각한다. 스스로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아호를 지어불렀던 그를 머리 속에 그려본다. 그의 마음속에 여기 청화산 자락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나보다.


옛 선비들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선유동(仙遊洞))이나 우복동(牛腹洞)을 열심히 찾았다지만 어디 그런곳이 정말 있을까? 이 세상에 과연 근심걱정 없는 곳, 그런 이상향이 따로 있을까? 

 

번잡한 도심을 떠나 대간길을 걸으면서 이성부 시인이 우복동(牛腹洞)을 찾으며 되뇌이던 노래를 읊어본다.

 

마음과 몸을 자주 산수(山水)에 붙이지만 / 숨어 살거나 세상 피해가자는 노릇이 아니다
내 집에서 쳐다보는 하늘 넓지 못하고 / 해와 달과 별빛 밝게 비치지 않는데
그래도 내 오래된 집이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기며 산다

 

세상 쪽으로는 문을 열고 / 마음이 가는 고요함 쪽으로는 문을 닫아
내 몸을 시장 바닥이거나 진흙탕 속에 / 내버려두는 것이 나는 즐겁다

아무런 근심걱정 생각할 것이 없는 곳 / 사람마다 다툴 것이 없는 곳
그런 데가 과연 있겠는가 생각하며 산길을 간다 /

우복동(牛腹洞)이 저어기쯤 될까 내려다본다

 

- 이성부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중에서 (일부 편집)

 


청화산 정상에서 선두그룹들이 모였다

 


 (2) 크로스컨츄리하는 대간돌이들

 

늘재에서 청화산을 오르느데  미처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통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오르막을 심폐훈련하듯 달려오른 셈이다. 저 아래에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 있었던가 싶다. 오늘의 크로스컨츄리가 얼마나 빡셀지 짐작이 간다. 그래도 몸이 풀렸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청화산 정상에서 잠시 휴식한다.

 

청화산을 떠난지 5분쯤 지났을까? 갓바위재 가는 길과 시루봉 가는 길의 분기점에 이른다. 동남쪽에 대간을 벗어나 우뚝 솟아있는 시루봉, 그 아래에 쌍용계곡도 있고 우복동도 있다고 했는데.......  이상향에 집착하는 마음을 털고 갓바위재 방향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마음을 비우면 다른 세상이 보이리라 생각하며 .......

 

한번도 빠짐없이 동행해온 대간돌이 정산(正山)의 컨디션이 오늘따라 좋아보이지 않는다. 늘 선두에 서는 이 성원님도 858봉, 801봉 전망대를 오르며 뒤로쳐진다. 후미조가 든든하기에, 잠시 망설이다 그들을 두고 선두와 함께 길을 재촉한다. 이어지는 암반길에 발걸음이 더뎌지지만, 간혹 나타나는 전망대에 서면 수려한 경관에 빠져든다. 의상저수지가 바라보이는 큰 바위에서 연거퍼 디카를 눌러댄다. 온 산하가 녹색세상이다.

 

갓바위재에서 조항산을 치고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지친다. 안내지도에는 15분정도 걸린다고 되어있는데 가도가도 심한 비탈과 암반지대가 계속된다. 곧 도착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으니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청화산을 오를 때는 2시간을 각오하고 1시간이 걸렸는데,  갓바위재에서 15분을 예상한 조항산은 40분이나 걸렸으니...... 아마도 지도의 표기가 잘못되었나 보다.

 

오늘 걷는 대간길은 속리산 구간보다도 더 험한 암반길이다. 곳곳에 희한한 이름의 바위들도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귀할멈 통시바위다. 마귀할멈 손녀바위도 있다. 일행이 마귀할멈 통시바위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그럴듯하다. 조항산에서는 잠시 기념촬영만하고 곧바로 대야산을 향해 내달린다. 모두들 신들린듯 달린다.

 

 


조항산 정상의 대간돌이들

 


(3) 고모령에서 부르는 노래

 

조항산을 내려서니 고모령이다. 오늘 산행의 중간지점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기운을 차려 출발하기로 한다. 각자 준비한 산행식이 나온다. 아내가 싸준 찰밥에 김치와 김을 겯들이니 맛이 기막히다. 다음에도 찰밥을 준비해야겠다. 권팀장이 가져온 막걸리 한 사발이 목을 축여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고모령의 석간수로 물통을 가득 채우고 선두조가 출발한다. 나는 남아서 후미조를 기다리기로 한다. 조항산에서 의상저수지로 하산하는 그룹과 열심히 교신을하고 대간팀의 영원한 후미 길원님을 기다린다. 그 사이에 도착한 정산의 얼굴은 제법 기운을 찾은 모습이다. 다행이다. 후미그룹의 점심에 다시 앉아 식사를 거든다. 가연님이 싸온 족발맛이 꿀맛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영자씨"가 묵은 김치에 찰밥을 싸서 일일이 일행들을 먹인다. 모두 절로 흥이 돋을 수 밖에....... 여기가 고모령이던가? 여기 고모령이 "비내리는 고모령"의 그 고모령인가? 영자님은 벌써 흥을 돋우며 노래를 뽑는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 넘어오던 그날밤이 그리웁구나"

 

"맨드래미 피고지고 몇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신세 ~~ 비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노래가락에는 질곡의 삶을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들의 애환이 절절이 스며있다.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네 가요도 그 내용과 가락이 많이 밝아졌다는 생각이다. 사실 오늘 걷는 백두대간의 고모령(高毛嶺)은 "비내리는 고모령(顧母嶺)"이 아니다. "비내리는 고모령"의 고모령은 대구에 있다.  이러나저러나 고모령(高毛嶺)에서 흥얼그리는 비내리는 고모령(顧母嶺)은 그저 일행들을 즐겁게 해준다.

 

길원님이 도착하자, 후미그룹도 사시사철 흐르는 고모샘의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대야산 가는 길을 재촉한다.

 


고모령에서 먹는 점심, 부르는 노래는 모두를 즐겁게 한다

 


 (4) 암릉산행의 진수, 상대봉 가는 길

 

고모령에서 시작되는 고모령 북릉은 암반으로 된 몇개의 봉우리들이 어우러져있다. 881봉, 854봉 암반을 넘어 849봉을 오르내린다. 849봉을 우회하지않고 정상을 치고 내리니 숲길에 넓고 큼직한 바위가 버티고 있다. 집채바위라 불리는 곳이다. 쉴틈도 없이 밀재를 향해 내리막을 달린다.

 

밀재에는 가연과 영자님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다. 대야산 가는 길목의 제법 넓은 고개마루, 늘재는 대간길을 따라 대야산을 오르내리는사람, 괴산 농바위골에서 올라온 사람, 문경 가은의 용추골에서 올라온 사람...... 고개마루가 시골장터처럼 시끌벅쩍하다. 선채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대야산을 향해 직행이다.

 

오늘은 왠지 갈길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고모령에서의 점심 먹은 시간을 빼고는 고개마루나 산 정상에서 제대로 쉬어본 일이 없다. 18km 가까운 산행거리와  줄곧 암산(岩山)을 오르내려야하는 부담이 넉넉함을 뺏아가고 있다.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연의 풍성함과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산을 오르내려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정산(正山)과 동행하며 본격적으로 대야산을 오른다.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도처에 깔려있고 사람들이 뒤섞여 로프에 의지해 암릉을 오르내린다. 고래바위를 벌써 지났나? 대문바위, 코끼리 바위가 눈앞에 버티고 있다. 코끼리바위에 올라 정산과 둘이서 간식을 먹으며 눈앞의 중대봉 암릉을 디카에 담는다. 그러나, 암봉의 형상만 담을 뿐이다. 바위를 통해 느껴지는 그 당당한 기세마져 디카에 담을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만 ......

 

그 사이 우리 뒤를 따르던 가연과 영자님은 바로 대야산 정상을 향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야산 정상인 상대봉 가는 길은 끊임없는 암릉이다. 군데군데 크고작은 바위덩어리가 그 위세를 자랑하며 버티고 있다. 자그마한 나무 작대기로 집채보다 더 큰 흔들바위를 받쳐놓은 애교스러움(?)에 미소를 머금으며 피로를 잠시 잊는다.

 

암릉에서 골절상을 입은 아주머니를 만난다. 이 험한 길을 어찌 내려가려나, 걱정이다. 직접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20여년 전 소백산에서 희방사 계곡으로 하산하던 길에 골절상을 입은 동료를 업어내리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다시 암릉을 걷는다. 중대봉으로 가는 길을 피해 상대봉 방향의 암릉을 줄타기하듯 오르내린다.

 


대야산 중대봉 방향의 암릉

 

 

 (5) 수직절벽에 매달린 대간돌이들

 

대야산 정상 상대봉(930.7m)에는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건너편 중대봉 가는 능선길의 암벽을 배경으로 정산(正山)은 카메라 셧터를 눌러댄다. 시간과 기력이 있었으면, 코끼리 바위에서 보던 그 중대봉 암벽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오려나?

 

뒤쳐져있던 제용님이 도착하고, 앞서가던 성호님이 피아골 방향으로 알바한 후 되돌아오고, 대야산 정상에 있던 정산과 나, 이렇게 넷은 촛대재를 향해  길을 나선다. 후미에 있는 길원님은 혼자서 길을 잘 찾을테고, 가연님과 영자님은 대야산 상대봉 직전 흔들바위에서 성호님이 만났다니 제대로 길찾아 촛대봉을 향한 모양이니.......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서 오늘 대간돌이들이 여러 사람 알바를 했고, 가연과 영자님은 상대봉 직전에서 중대봉 능선으로 알바하는 바람에 농바위골로 하산함) )

 

대야산 상대봉에서 촛대봉 가는 길은 자칫하면 알바를 할만하다. 성호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도 자칫 알바를 했으리라. 상대봉에서 암릉을 따라 조금 걸으니 이름 그대로 수직절벽이 나타난다. 내리막 절벽에 매달린 밧줄에 의지해 한 사람씩 하강한다. 한 고비 끝나면 또다른 수직절벽이 나타난다. 아찔아찔,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스무 차례이상 걸어온 백두대간중 가장 험난한 코스다. 지난 번 속리산 구간의 개구멍 바위 통과는 비할바가 아니다. 오로지 손목 힘과 로프에 의지해야하는 절벽타기는 스릴도 있지만 그 오싹함에 머리카락이  뻣뻣히 선다. 그래서 저 아래 지나온 고개이름이 고모령(高毛嶺)이었을까?

촛대재를 지나 촛대봉에서 되돌아보는 대야산 상대봉은 수십미터의 가파른 낭떠러지로 보인다. 어떻게 저 수직절벽을 밧줄감고 내려왔나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옛 고개의 모습을 간직한 불란치재를 지나 곰넘이봉을 오른다.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라 생각하니 사그라져가던 기운이 샘솟는다.

 


대야산 상대봉 암벽위에서 예술(?) 작업에 여념없는 정산

 


 (6) 그들은 우리를 유격대로 생각했겠지?

 

곰넘이봉 오르는 길의 미륵바위는 그 형상이 참으로 특이하다. 미륵바위에서 되돌아보는 대야산은 그 수직절벽을 옅은 안개속에 살짝 숨긴채 우뚝 서있다. 오늘 지나온 암릉과 수많은 바위들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전망대와 암반길, 계란바위, 갓바위, 집채바위, 고래바위, 대문바위, 코끼리바위, 흔들바위, 미륵바위 .......

 

미륵바위에서 만난 한 무리의 산객들과 잠시 인사를 나눈다. 오후 4시 15분이다. 아침 9시에 늘재를 출발해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해 7시간 15분 걸렸다니까 믿지를 않는다. 자기들도 늘재에서 출발했는데 우리보다 2시간 30분 빠른 아침 6시 30분에 출발했단다. 늘재부터 메모해온 산행기록을 보여주니 그제서야 믿는 표정이다. 뭐, 그 옛날 김신조의 124군 부대인가? 무슨 유격대인가? 하는 표정이다.

 


미륵바위 앞에 선 성호님, 아스라히 대야산 정상이 보이고.....

 

 

앞서간 우리 일행들 얘기를 했더니 아마 1시간은 먼저 지나갔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인상착의가 앞서간 우리 선두조를 빼닮았다.  걷는듯 한데 날씬 제비같아 뛰는 사람보다 빠른 잘 생긴 아저씨(권팀장), 국가대표 선수인지 가슴에 태극기 달고 다람쥐마냥 산언덕을 오르는 사람(성원 님), 가파른 오르막을 숨소리도 안내고 잘도 오르는 멋있게 생긴 아가씨(춘희 님), 좀 나이들어 보이는데 얼굴에 피곤한 기색 하나없이 잘만 걷던 썬글라스 낀 아저씨(종환 님) .....

 

곰넘이봉 너머 마지막 암벽을 오르내리니 흙길이 나타난다. 그동안 자주 걸었던 육산(肉山)의 푹신함에 몸에 스며든다. 버리미기재가 가까워져옴을 느낄 수 있다. 숲길을 여유롭게 걷는다. 떡갈나무 숲이 끝나는 곳에 전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며 우리를 반긴다. 먼저 온 팀들이 두팔벌려 맞아주고 .......

 

17.5Km, 7시간 55분의 암릉길 산행, 풀코스 마라톤보다 더 힘든 여정이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다. 조항산에서 먼저 하산한 팀이 탄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버리미기재 계곡에서 족탕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는다. 상경길에 일행이 괴산의 소금강에 들러 맛난 저녁(천하 일품 된장라면)을 먹으며 겯들이는 소주잔에 여기가 바로 선유동(仙遊洞)이 아닌가 한다.

 

상경길에 잠시 들린 남대장 누님이 가꾸어놓은 허브농원도 선유처(仙遊處)임에 분명하고 ..... 누님, 작년처럼 내년 봄에도 박달산에 두릅 따고 취나물 캐러 다시 들릴테니 허브향처럼 고운 미소 그대로 간직하소서.

 


소금강에 모인 강마의 백두대간 멤버들

 


 (7) 산행을 마무리하며

 

대간길에 나서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육신의 무게를 털어버리고 마음의 무게마져도 내려놓기 때문인지 모른다. 육산(肉山)을 걷는 아늑함도 좋지만 암릉에 자신을 맡긴채 몰아쉬는 거친 호흡은 그 숨가쁨만큼 마음을 몰입하게 만든다. 몰입할수록 몸과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래서 대간길은 비탈의 가파름과 무관하게 늘 가벼운 발걸음이다.

 

때로는 경치에 취하고, 때로는 산사람의 마음에 취하며 걷는 백두대간길........ 오늘은 그저 무념무상, 암릉을 오르내리며 외줄타기하듯 바위에 집착한다. 아니 밧줄에 매달린다. 오늘 내가 매달린 그 밧줄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명 그 자체인가? 삶의 가치인가? 존재하는 이유인가?

 

대간길의 성황당도, 정국 기원단에 세워진 비석도 모두 하나의 조형물이다. 320년된 엄나무가 그 생명을 지켜오며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우지만 속인들의 눈에 그 모습이 제대로 비치겠는가? 통시바위,코끼리바위,미륵바위,촛대봉,곰넘이봉 ...... 자연의 형상을 그냥 각인하지않고 굳이 이름을 붙여야 기억에 새겨지니 언제나 이름에 얽매이지 않는 그 경지를 볼 수 있겠는가?  이 상념에서 언제나 헤어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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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산행 세부기록

 

 

(1) 운행 시간(초반-선두기준, 후반-후미기준)

 

...... 08:50 늘재(371m) 도착, 성황당에서 기념사진 촬영
...... 09:02 늘재 출발
...... 09:18 전망바위
...... 09:34 870봉(전망바위)
...... 09:59 청화산(984m) - 6분 휴식
...... 10:12 갈림길(갓바위재 방향과 시루봉 방향 분기점)
...... 10:36 801봉(전망바위)
...... 10:41 769봉
...... 10:56 전망바위-좌측으로 의상저수지 보임
...... 11:01 갓바위재(헬기장)
...... 11:41 조항산(961.2m)
...... 12:02 고모령 - 60분휴식(중식)

...... 13:02 고모령 출발(샘터 석간수)
...... 13:32 고모령 북릉(암릉, 854봉)
...... 13:52 집채바위
...... 14:02 밀재 (좌측 농바위골, 우측 용추골)
...... 14:25 대문바위, 코끼리 바위(5분 휴식)-중대봉 조망
...... 14:55 대야산(930.7m) - 10분 휴식
...... 15:41 촛대재(550m)
...... 15:49 촛대봉(668m)
...... 16:00 불란치재(500m)
...... 16:15 미륵바위(전망대)
...... 16:27 곰넘이봉(733m)
...... 16:57 버리미기재
...... 19:40 소금강 출발
...... 21:56 서울 개포동 도착

 


(2) 참가대원 명단

 

...... 대간팀: 권오언,김성호,박희용,손영자,송영기,오영제,이성원,정제용,홍명기,서종환,김길원,이균호,장춘희,김가연,정구호 지인
...... 산행팀: 남시탁,김영이,김종복,이영희,박홍구,유난희,이기순,박재상,이규익,이두원,이윤일,이종만,윤재용,지 용,정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