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기]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종주일자 : 2003년 8월 23일(금) - 8월 25일(일) 2박3일
- 종주코스 : 성삼재-노고단-연하천(숙박)-벽소령-세석-장터목(숙박)-천왕봉-중봉-치밭목-대원사
- 종주대원 : 김정환, 김재철, 송영기, 심재천, 박희용
8. 천왕일출(天王日出)
[저 높은 곳을 향하여]의 제 8부 [천왕일출]편은 정산(正山)이 쓴 산행기 [지리산아 ! 능선아 ! 능선아 !] 로 대체합니다. 정산(正山)의 예리한 시각과 감성적 터치가 돋보이는 산행기입니다.
지리산아 ! 능선아 ! 능선아 ! (글 : 正山 宋榮基)
그믐달과 별빛이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리는 제석봉, 거친 숨소리를 토하며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들은 누구랄것도 없이 경건해지기 시작한다. 통천문을 지나면서 여명이 오고 주위는 전등이 없어도 될 정도로 아주 밝아졌다. 이제 조금 후에는 상봉에서의 일출을 보게 될 것인지? 여기 하늘은 맑지만, 저 너머의 구름밭을 알지 못하기에 나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정상에는 인산인해로 사진을 찍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진의 제안으로 우리는 사람이 많지 않은 동쪽의 조금 낮은 봉우리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동쪽하늘을 주시하면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과 자연의 장려한 변화에 함몰되고 있었다. 아, 일출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저 하늘의 서기어린 변화를 보라. 지금 진행중인 운무의 세레머니는 천왕일출의 식전행사임이 틀림없다. 태양은 항시 그대로인데 앞에 있는 구름들의 조화로 3대 선업이 어쩌니 저쩌니 하느것 아닌가?
일출을 보는 것은 그래서 행운이다. 해가 안 뜨는게 아니고 구름이 가려서 안 보일 뿐이다. 그런데 구름이 또 너무 없으면 밋밋하다. 적당한 차단과 적절한 트임으로 그 사이의 햇빛에 우리가 열광한다. 일출은 아주 짧은 찰나이다. 그렇지만 그 전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려한 캔버스의 하늘은 역동적이며 엄숙하다.
서서히 그리고 해는 쑥 올라왔다. 찬탄과 환호가 이어지고 모두가 기도자가 되고, 시인이 되고, 환희에 좋아한다.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구름이 옅어지고 은둔의 능선들이 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기념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흐믓하고 넉넉한 마음이 되었다. 이것으로 상봉에서의 하이라이트가 종료되었다.
몇해 전 추암에서의 일출도 멋�지만, 바닷가가 평면적이었다면 천왕봉에서의 일출은 입체적이랄까?.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18미리 광각으로 보이는 하늘은 욕심을 더 내어 좀 더 광각쪽으로 가고 싶게 한다. 허상을 허상으로 기억하고 싶으며 그 또한 왜곡된 피사체로서 실제보다 더 멋진 그림을 만들겠다는 얄팍한 생각에.
어찌 자연을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우리 다섯명은 여행의 종착지로 간다. 중봉을 거쳐 써리봉을 향한다. 쉬는 봉우리마다에서 상봉을 조망해보면 그 위엄이 군황의 자태를 연상시키다. 왜 천왕봉이라 명명했는지 쉽게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여기에 군신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지리산의 주봉으로 몇 겁을 지나온 대 자연이 있다. 위엄한 권위가 있다. 커다란 포용이 있다. 침묵으로 조용히 말한다. 조용하라. 경박하지 말라고.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능선을 거치면서 조망 좋은 곳에서는 능선아, 능선아를 불렀다, 그것은 봉우리만이 아닌 전체를 통칭하는 애매하고 함축적인 부름이다.
무진이는 계곡에 빠지고 그래서 안기고 싶다고 했다. 자잔한것을 다 포용해버리는 스케일 큰 어른의 모습을 본다. 거기에는 시대에 저항한 용기있는 이들과 이들의 반대입장에 있는 모두를 다 포용하는 모습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나는 능선만 보면 셔터를 눌러댔다. 36컷트 짜리 슬라이드 필름을 8통 소비했다. 그져 찍고 싶었다. 오른쪽으로 터진 조망에서 능선만 보면 셔터를 눌러댔다. 운해와 숨박꼭질하는 능선의 겹침이 어둡지 않고 밝았다. 암흑색이 아니고 엷은 청색이다.
그리하여 동쪽의 천왕봉을 만나고 이제는 서쪽의 천왕봉을 보면서 하산한다. 저멀리 노고단과 반야봉의 능선이 운무속에서 보일 듯 말 듯 보인다. 지리산의 장쾌한 모습을 묘사하는데 이 보다 더 적합한 말을 나는 �지 못한다.
능선아! 능선아! 능선아!
누구의 표현대로 장쾌한 지리산 계곡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침이면 아무일 없이 평온하듯이, 일상으로 돌아온 나 또한 아침의 평정을 견지하지만 밤이면 그 곳 지리의 장쾌한 능선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되어 계곡 깊은 곳에서부터 저 먼 능선의 여러곳을 만지곤 한다.
열병이 되면 안될텐데 하면서 다시 여름이 오면 그 열병에 걸리고 싶다. 그 해 8월 날씨가 지독히도 좋아 순탄했던 우리 친구들과의 지리산 여행이었다.
지리산아! 능선아! 능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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