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31) 설산, 바다, 하늘이 하나로

月波 2006. 2. 6. 17:08

 

[백두대간 31차] 설산, 바다, 하늘이 하나로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2월 5일(당일산행)

 

 (2) 산행구간 : 건의령-푯대봉-구부시령-덕항산-자암재-큰재-황장산-댓재(424지방도)

 

 (3) 산행거리 : 18.0Km(도상), 19.7km(실측)

     -도상(18.0km) : 건의령-1.0-푯대봉-5.3-구부시령-0.8-덕항산-6.9-큰재-3.2-황장산-0.8-댓재

     -실측(19.7Km) : 건의령-8.0-덕항산-5.5-광동댐이주단지(858.6 전망대)-4.7-황장산-1.5-댓재

 

 (4) 산행시간 : 7시간 30분(중식, 휴식 40분 포함)

 

 (5) 참가대원 : 강마 17명 대간돌이

     - 권오언,김성호,남시탁,박희용,송영기,오영제,이성원,장재업,정제용,지용,홍명기,김길원

     - 문주섭,변주희,신정호,이상호,장복주

 

 

2. 산행 후기

 

 (1) 입춘(立春)에 떠나는 설산(雪山) 나들이

 

입춘(立春), 봄에 접어든다는 24절기의 첫번째 절기가 바로 어제인데 바깥날씨는 아직도 겨울의 한복판에 있다. 입춘이 되면 예로부터 민초들은 농사준비에 바빴다. 내 어릴적 시골에서는 입춘날 대문이나 집안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같은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이고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곤 했다. 그 때 초당에 긴 담뱃대 물고 서책에 벗하시던 조부님 얼굴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입춘 날  보리 뿌리를 뽑아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맥근점(麥根占)을 치곤하던 농사꾼의 모습을 할아버님은 흐뭇하게 지켜보시곤하셨다. 보리뿌리가 세가닥이면 풍년, 두 가닥이면 평년,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 그런데, 며칠 전 설날을 맞아 오랫만에 찾은 시골마을의 벌판에서 보리밭을 한 평도 구경할 수 없었으니, 더욱 할아버님의 생각이 간절�는지 모른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맹추위 속에  백두대간 건의령을 2주만에 다시 찾는다. 건의령을 오르면서 내려다보이는 태백의 상사미동은 눈으로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애당초 봄에 대한 기대보다 설산의 장관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더하지 않았던가? 기대한대로 푯대봉을 오르는 대간길에서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만난다. 겨울산행은 역시 눈길을 밟는 재미가 있어 좋다. 건의령에서 푯대봉까지 힘든줄 모르고 단숨에 치고 올라간다.

 

건의령에서 내려다본 태백의 상사미동 마을

 

건의령은 태백의 상사미동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려말 선비들의 공양왕에 대한 충절이 담겨있는 곳이다. 삼척으로 유배왔던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죽임을 당하자 고려충신들이 이 고개에 관모와 관복을 벗어놓고, 태백산으로 숨어들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기서 유래해 관모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를 합하여 건의령(巾衣嶺)이라 부른단다. 요즘은 한의령(寒依嶺)이라고도 불리지만 ...... 왕조의 마지막 임금 이야기는 항상 애닯기만 하기애 항상 애사라 부르던가? 하지만 새로운 왕조에 어찌 옛왕이 존재할 수 있으리오?

 

 

  (2)  푯대봉에서 구부시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푯대봉(1009.9m) 정상에서 잠시의 숨돌릴 틈도 없이 오른쪽 내리막길에서 눈썰매를 타며 대간길을 잇는다. 이곳에서부터  구부시령까지는 951m봉, 1,161m봉, 997m봉, 1,017m봉, 1,055m봉 등 수없는 무명봉을 오르내린다. 200m 정도의 표고 차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눈길을 걷는다. 

 

잘록한 고갯마루를 지나면 봉우리고 다시 고개로 내려섰다가 오르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구부시령(九夫侍嶺)에 닿는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에 오르내리막이 많으니 초반부터 체력 소모가 많아진다. 누군가 다람쥐도 눈물을 흘릴 만큼 힘든 곳이란 표현했던가? 애교섞인 과장법이다.

 

구부시령(1007m, 九夫侍嶺)에는 먼저 도착한 단체 산행객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추위를 녹이며 후미를 기다리고 있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 덕항산에서 삼척의 환선굴로 탈출하지 싶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간혹 저렇게 여유있는 산행을 꿈꾸어본다. 외줄기 한 길에 매달리지 않고 발길이 편한대로 숲과 계곡을 즐기는 여유도 또다른 산행의 운치이니까 .....

 

잠시 길을 벗어나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돌아오니 우리 일행은 뒷꽁무니를 찾을 수 없다. 이왕 늦은 것, 잠시 구부시령의 전설을 생각하며 따뜻한 녹차 한 잔을 즐긴다. 이야말로 설산에서 맛보는 색다른 행복이다. 구부시령(1007m, 九夫侍嶺), 옛날 이 고개아래 삼척 대이리에서 주막을 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지아비들이 계속 요절하는 바람에 아홉명의 지아비를 모시고 살았다고 해서 구부시령이라 부른단다.

 

9명의 지아비를 모셔야했던 여인네의 애달픈 사연은 무었일까? 이 고개가 하도 넘기 어려워 아홉 서방을 모시고 사는 인생의 어려운 삶보다 더 힘든다는 이야기일까? 새목이에서 앞서가던 우리 대간돌이들을 만나 잠시 서서 간식을 먹고 덕항산을 향해 오르막길을 오른다. 성호님, 그 롤 케이크가 정말 꿀맛이었다오. 다음에는 커피향 은은한 롤케이크를 나도 준비하리다.

 

푯대봉을 지난 참나무 숲길에서, 복면강도는 아니지요?

 

  (3) 산과 바다, 동굴의 삼위일체

 

덕항산(1070.7m) 정상에 어렵지 않게 오른다. 그 정상은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밋밋해 일견 실망감에 젖기 쉽상이다. 그러나, 고개들어 동쪽을 보라 ! 그리고, 발아래 저 북동쪽 계곡을 살펴보라 ! 실망감이 이내 환희로 바뀐다. 저 푸른 빛 가득한 동쪽 하늘은  도대체 뭐야? 자세히 보니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해의 푸른 바다가 하늘과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바로 맞닿아 있다. 발아래 계곡에는 환선굴로 이어지는 삼척 골말 마을이 아련히 보인다.

 

저기 산너머 굴게 보이는 하얀줄이 수평선, 그아래는 바다요 위는 하늘이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설산, 푸른 파도 일렁이는 동해바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굴이 3위1체를 이루는 현장이 바로 여기, 덕항산이지 않는가? 덕항산에서 환선봉으로 이어지는 동고서저 지형의 벼랑끝 눈길을 걷는다. 막상 정상에서 못느꼈던 덕항산의 수려한 산세를 환선봉이 가까워질수록  체감한다.

 

동남으로 펼쳐지는 병풍암, 거대한 암벽칼로 벤듯한 암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우뚝 솟은 촛대봉등이 잎떨어진 앙상한 나무가지 너머에서 휘날리는 눈발에 젖은채 특이한 절경을 이루며  있다. 그 아래 산중턱에 동양최대를 자랑한다는 석회동굴인 환선굴이 있는데, 그 입구로 향하는 골말마을이 아스라히 내려다보인다. 몇 해 전 여행길에 환선굴 입구까지 왔다가 입장시간이 마감되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쉬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환선봉을 향해걷는 길의 오른쪽은 천길 벼랑끝이다. 군데군데 로프를 설치해 놓았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래도 우리는 전망좋은 벼랑끝에서 눈속에 딩굴기도 하고, 동해를 바라다보며 콧노래도 부른다. 언젠가 더운 여름날에 저 아래 환선굴을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산능선에서 눈속에 파묻히고 딩굴고, 저 아래 계곡은 10승지라 불리는 골말(환선굴 입구)

 

 

  (4) 자암재를 지나 고냉지 채소밭으로

 

환선봉에서 자암재로 내려서는 길에는 제법 눈이 많이 쌓여있다. 완만한 내리막길에서는 스키를 타듯 양발로 미끄럼을 즐기기도 하고, 간혹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러셀하면서 힘들게 걷기도 한다. 눈길을 걷는 마음에는 어느새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스며들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후천적으로 지득(知得)한 2분법적인 분별심(分別心)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눈매 그 자체다.

 

1979년 어느 여름날이었지 싶다. 해인사 홍제암에서 밤을 새워 3,000배를 한 후, 홍류동 계곡에서 첨벙첨벙 세상의 때를 씻어버리고는 새벽안개 자욱한 산길을 따라 백련암으로  성철스님을 친견하러 갔던 기억을 어찌 잊으랴? 그 때 뵌 성철스님의 눈매는 바로 어린아이의 해맑은 눈빛 그 자체였다. 세상에 나와 체득한 "잘났다, 못났다" "돈이 많다, 적다" "학벌이 좋다, 시원찮다" 등등 소위 2분법적 분별심(分別心)을 털어버린 그 눈빛 .........

 

오늘 이 눈밭에서 불현듯 성철스님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스스로에게 죽비를 들고 경책하려는 소망으로 생각하고 싶다. 자암재의 참나무밭에 쌓인 하얀 눈이 그 마음을 대신 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갈길을 재촉한다.

 

자암재 참나무밭에 쌓인 눈, 세상의 2분법적 분별심을 버리게 한다

 

조금씩 허기가 져 오는 것을 느끼며 눈길을 걷는다. 길 왼쪽으로 눈에 뒤덮힌 넓은 개간지가 나타난다. 광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지역민을 위한 집단 이주단지가 이 깊숙한 백두대간 자락에 만들어졌다. 빨간색, 파란색등 원색의 지붕이 돋보이는 이주마을이 강렬하게 시선에 들어온다. 이주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고냉지채소밭은 눈속에 덮혀 설원을 이루고있다.

 

그 설원을 가로질러 대간길을 이어간다. 전후좌우로 수십만평은 되리라. 간혹 눈길에서 드러나는 채소밭은 온통 돌밭이다. 이 척박한 땅에서 채소가 자란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수없는 나무와 들풀을 만난다. 아무리 토양이 척박하더라도 함부로 뿌리를 옮기지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초목의 모습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전후좌우가 온통 은빛 세상인 고산의 설원지대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체력을 보강한다. 후미그룹은 제법 뒤쳐져있는지 소식이 없다. 무전을 보내 길을 안내하고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흰눈에 뒤덮힌광동댐 이주마을과 고냉지 채소밭

 

 

  (5) 동명이산(同名異山)의 황장산

 

광활한 고냉지 채소밭을 통과하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얼마나 넓은지 과히 짐작이 된다. 큰재를 지나 다시 오른쪽에 동해를 바라보면서 대간길을 이어간다. 멀리 동해항의 하얀 등대가 우뚝 솟아있다.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간간히 아름드리 소나무가 나타난다. 적송(赤松)이다. 황장목(黃腸木)이 보이니 황장산이 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차갓재 지나 걸었던 그 황장산과 동명이산(同名異山)이다. 황장목은 그 황장목이지만 .......

 

산행이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도 편해지고 걸음도 여유로워진다. 동해바다가 쪽빛으로 눈이 시리게 다가온다. 수평선에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으니 저게 바다야? 하늘이야? 바다면 바다대로, 하늘이면 하늘대로 눈부시니 2년여 대간길에서 처음 맛보는 즐거움이다. 지금부터 두타, 청옥을 지나고 대관령, 설악산, 진부령에 이르기까지 오른쪽 가슴에 동해를 껴안고 걸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인다.

 

큰재 지나 황장산 가는 길에서 본 雪山, 東海, 푸른 하늘

 

황장산은 생각보다는 특별한 구석이 없어 아쉽지만 나중에 댓재에서 뒤돌아보는 멋을 기대하며 하산을 서두른다. 저기 오른쪽 발아래에 삼척에서 댓재로 올라오는 424번 지방도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424번 도로가 저 정도 포장이 잘 되어 있으면, 오늘 삼척항에 들러 싱싱한 회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입안에 군침이 돈다. 식후경(食後景)이라 했겠다.

 

댓재로 내려서는 길에서 오랫만에 눈덮힌 산죽군락을 만난다. 추사의 세한도(歲寒圖)와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를 이야기하며 홍 명기님과 산죽밭을 걷는다. 눈속에서 대나무의 푸르름과 곧음이 더욱 빛을 발하는거라고 ....... 그러다가 명기님은 아예 눈덮힌 산죽밭에 빠져든다. 그저 그렇게 살고 싶은것일까?

 

백설이 난무해야 산죽의 푸르름을 알 수 있는가?

 

 

  (6) 에필로그

 

오늘 대간길의 백미는 역시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덕항산의 수려한 산세이리라. 산 정상에서는 그 멋을 제대로 못느꼈지만, 환선봉을 지나고 자암재를 거치면서 되돌아보는 모습은 과히 절경이라 할만했다.

 

푸른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천인단애의 석벽이 쌓였다고나 할까?  병풍암, 거대한 암벽칼로 벤듯한 암면, 하늘을 받친 양 우뚝 솟은 촛대봉이 눈속에 제 모습을 숨긴듯, 드러낸듯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바위들은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않고 비상을 꿈꾸며, 세월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름 날 그 바위들을 만나러 다시 덕항산을 찾아야겠다.

 

 

                                        바위를 위한 노래 - 이외수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랴
                             천만년 한 자리에 붙박혀 사는 바위도
                             날마다 무한창공을
                             바라보나니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눈물겹더라

                             ........................

                             그래도 천만년 스쳐 가는 인연마다 살을 헐며
                             날마다 무한창공을
                             바라보나니


                             언젠가는 가벼운 먼지 한 점으로
                             부유(浮遊)하는 그 날까지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랴


 

 

 

 

♬ I'm In Love For The Very First Time /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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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산행기록]

 

  04:10  서울 개포동역 출발

  06:12  강릉 휴게소 도착(조식)

  06:51  강릉휴게소 출발

  07:30  강릉 왕산 35번 국도 진입

  08:20  태백 상사미동 도착, 건의령으로 출발

 

  08:35  건의령(880m) 출발

  08:57  푯대봉(1009.9m)

  10:40  구부시령(1007m) 도착(5분 휴식)

  10:45  구부시령 출발

 

  11:00  새목이 도착(5분 간식후 출발)

  11:20  덕항산(1070.7m)

  12:00  환선봉(1079m) 

  12:12  헬기장

  12:30  자암재

 

  13:00  고냉지채소밭 중간도착(점심 30분)

  13:30  고냉지 채소밭 출발

  14:02  큰재

  15:45  황장산(1059m)

  16:05  댓재(후미 도착대기, 휴식)

 

  17:10  댓재출발

  18:00  삼척항 도착(저녁, 뒷풀이)

  19:00  삼척 출발

  22:10  서울 대치동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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