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지리산 서북능선 불시착(不時着)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2월 26(일) 당일 산행)
(2) 산행구간 : 성삼재-작은 고리봉-만복대-정령치-고리봉-고기리-가재마을
(3) 산행거리 : 12.35Km(도상), 13.85km(실측)
- 도상 : 12.35 Km
성삼재-1.6-작은 고리봉-3.3-만복대-1.8-정령치-0.75-큰 고리봉-2.8-고기리-2.1-가재마을
- 실측 : 13.85Km (포항셀파 측정)
성삼재-5.2-만복대-2.2-정령치-0.9-큰 고리봉-3.4-고기리-2.15-주촌리 가재마을
(4) 산행시간 : 5시간 14분(중식, 휴식 35분 포함)
(5) 참가대원 : 나홀로 백두대간
2. 산행후기
(1) 지리산 서북능선 불시착(不時着) ???
갑작스레 떠난 산길, 왜 그다지도 지리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했었던지 ....... 어제(토요일 오전)의 일이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려고 런닝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하기를 저녁무렵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내일 아침에 그칠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나 ........ 정신이 번쩍!
비(雨)라니! 그것은 지금쯤 산에서는 눈(雪)을 말하지 않는가? 그럼 내일 새벽에 출발, 눈덮힌 지리산의 서북능선을 한번 걸어봐야지. 계산이 서자, 마음이 바쁘다. 배낭을 꾸리는 사이 마음은 벌써 콩밭에 가있다. 무릎까지 눈이 빠지면 어떻고, 간간이 길이 얼어 빙판을 이룬들 그게 무슨 대수랴?
양수겹장, 일석이조로 지난 번(2004. 6. 20. 백두대간 9차)에 펑크낸 지리산 3구간 땜빵도 가능하고 ....... 나홀로 걷는 홀대모들의 생각을 헤아리면서 짧은 구간이지만 혼자 대간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 지리산의 서북능선이 남원의 고기리, 주촌리 가재마을까지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현장에 서보기도 하고 .......
그리하여 고고히 높은 세상에만 있는 줄 알았던 백두대간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리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실상사에 들러 시절의 연이 닿으면 백우당 각묵과 매화차 한 잔 나누는 행복이 따를지도 모르겠고 .........
(2) 산으로 간다는 것은?
마음이 동(動)하는대로 나선 산길이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한 자락을 밟는 길이니, 지리산에 가슴을 묻고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성삼재에서 만복대로 향한다. 지리산과 함께 살면서,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지리산의 4계를 읊었던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환갑도 지나지 않은 아까운 나이에 이 세상과 작별하고, 당신의 원대로 영영 지리산으로 들어가셨지요.
우리는 그 분을 하성목 작가라 불렀답니다. 하성목(河星木) 선생, 그는 스스로를 이름없는 나무라 불렀지요. 묘하게도 그의 이름에는 그 뜻이 완벽히 담겨 있습니다.
내 이름은 물(河), 별(星), 그리고 나무(木)
나는 이름이 없다
나는 단지 강을 따라 흐르는 강물(河)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星)
그리고 바람이 스쳐간 나무(木)일 뿐
나는 이름이 없다
山으로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산길을 걸으며 그 뜻을 헤아려 봅니다. 하성목 작가의 이름대로, 우리가 山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가 한 때 나무였고, 한 때 물이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풀과 함께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山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가 훗날 그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그 동안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지리산을 찾았지만, 아직 지리산을 잘 모른다. 천 번을 오른들 지리산을 알 수 있겠는가? "산은 늘 새롭게 나를 맞이하므로, 오늘도 나는 처음 산에 오르고 있다"던 그 분의 말씀대로 늘 첫 산행의 마음으로 지리산 만복대로 향합니다.
(3) 만복대, 그 은빛의 산정(山頂)에서
만복대 가는 길에는 은빛 설화가 가득합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산에서 눈을 직감했던 보람이 있습니다. 만복대 오르는 길에는 생각하기에 따라 봄빛에서 겨울정취까지 다양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말과 글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직접 눈으로 ......
(4) 여백이 있는 뒷모습
섬진강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간밤에 눈으로 변하고, 낙동강(남강)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그대로 비가 되었는가? 걷고 있는 대간길의 좌우가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앞서 걷고 있는 대간돌이들을 따른다. 그들의 뒷모습에서 삶의 모습을 읽는다. 욕심을 털어버리고 걷는 그 뒷모습, 여백이 있는 그 모습이 좋아보인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는 것, 누군가에게 내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아마도 사람의 뒷모습에는 그 사람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는 뒷모습...... 그러나 이젠 뒷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그런 뒷모습이 부러워진다.
은빛의 눈길을 걷고 있는 앞 사람의 뒷모습에서 느끼는 여백(餘白)의 미(美)가 조금씩 나에게로 다가온다. 이래서 산을 걸으면 모두가 동지가 되는 것인가? 여백이 느껴지는 뒷모습,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드러내놓는 뒷모습에서 법정스님이 산방한담에서 하셨던 말씀을 새삼 되새기며 산길을 걷는다.
"사람의 앞면은 얼마쯤 치장과 허세로써 위장할 수 있지만, 뒤면은 그런 장치가 가동될만한 오관이 없다. 그러기에 사람의 뒷모습은 그만큼 진실한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5)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큰 고리봉(1304.5m)에서 대간길은 그 허리를 한없이 낮춘다. 내리막 눈밭을 딩굴기를 얼마나 했을까? 이렇게 몸을 낮춘 대간길은 잣나무 숲, 소나무 숲을 지나고 덜커덩 사람사는 세상으로 내려 앉는다. 고기리 마을이다. 그기서 주촌리 노치부락(가재마을) 가는 길은 737번 지방도로다. 이 길이 대간길이다. 노치마을 입구에서 수정봉 오르는 길목까지는 농로가 대간길이고 .......
옛날 절을 지을 때 닭울음 소리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 그래서, 낙동강과 섬진강 물길을 갈라놓는 대간길은 지리산 그 산중보다 더 높은 꼭대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 대간길이 버스길, 농로, 사람 사는 마을의 한가운데로 내려앉으니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모습 그대로다. 모두 모두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가재마을 입구에서 만복대를 오르며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 걸어온 부산 벽소령산악회 님들과 아쉬운 작별이다. 일행중 2명은 오늘 구간이 백두대간을 완성하는 구간이라니 ........ 님들의 대간 완주를 축하합니다 ! 눈길을 할강하던 그 선녀님은 남은 대간길 마무리 잘 하시고 .......
서울로 향하던 길에 다시 인월을 거쳐 산내의 실상사에 들렀지만, 시절의 연이 오늘도 닿지 않는다. 백우당 각묵은 중생들을 찾아 낮은 곳으로 임하셨으니 ........ 고로쇠 약수 한 통으로 속을 채울 따름이다. 벽소명월, 지리 10경할 때에는 미리 청(請)이라도 넣어야 할까보다.
가재마을 입구, 농로가 대간길이다. 뒤로는 수정봉이다.
-------------------------------------------------------------------------------------
[세부 산행기록]
05:40 서울 대치동 출발
08:34 88고속도로 지리산 인월IC 도착
09:11 지리산 뱀사골 반선 통과
09:15 지리산 뱀사골 달궁 통과
09:24 지리산 뱀사골 심원마을
09:30 성삼재 도착
09:46 성삼재(1070m) 출발
10:37 작은 고리봉(1248m)
11:02 묘봉치(1108m)
12:07 만복대(1433.4m) 도착(7분 휴식)
12:30 전망대(중식 18분)
13:11 정령치(1172m)
13:38 전망대
13:45 큰 고리봉(1304.5m, 서북능선 갈림길, 휴식 10분)
14:43 고기리 도로(737번 지방도로)
15:00 덕치리 노치마을(가재마을) 입구
15:20 가재마을 출발
15:45 실상사 도착
16:00 실상사 출발
16:25 반선 경유, 지리산 인월IC
17:05 함양휴게소 출발(25분 석식후)
20:25 서울 대치동 도착
-------------------------------------------------------------------------------------
귀거래사(歸去來辭)
[죽도록 사랑해] 삽입곡
말이 없는 저 들녘에 내 님을 그려보련다
|
만복대에서 정령치 가는 길목의 주목(朱木)
가득한 설화, 천년을 머금었으면 ...
'산따라 길따라 >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34) 겨울 산에서 봄내음을 맡으며 (0) | 2006.03.27 |
---|---|
(3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0) | 2006.03.05 |
(32) 일망무제(一望無際)의 그 산정(山頂)에서 (0) | 2006.02.20 |
(31) 설산, 바다, 하늘이 하나로 (0) | 2006.02.06 |
(30) 겨울산에서 드리는 기도 (0) | 2006.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