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길따라/* 백두대간

(3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月波 2006. 3. 5. 22:36

 

(3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 산행개요

 

 (1) 산행일시 : 2006년 3월 5일(일) 당일 산행

 

 (2) 산행구간 : 백봉령-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3) 산행거리 : 17.0Km(도상), 18.5km(실측)

     - 도상(17.0km) : 백봉령-4.7-생계령-6.5-석병산-1.5-두리봉-4.3-삽당령

     - 실측(18.5Km) : 백봉령-3.28-헬기장-8.92-석병산-6.3-삽당령

 

 (4) 산행시간 : 5시간 57분(휴식및 식사 1시간 10분 포함)

 

 (5) 참가대원

     - 권오언,김길원,김성호,김희각,남시탁,박희용,송영기,이상호,이성원,장재업,장재윤,정제용,홍명기

 

 

2. 산행후기

 

 (1) 스피드 욕심만 버리면

 

달림이들에게 있어 3월은 겨울내내 훈련해온 성과를 점검받는 달이다. 산사에서 선방(禪房) 수좌(首座)들이 동안거(冬安居)를 하듯이,  용맹심을 갖고 제대로 겨울 훈련을 했다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동아마라톤이 기다려질 법도 할텐데 ..... 동아마라톤 출전을 앞두고 근력보강으로 하는 백두대간 산행이 작년과 달리 부담스러운 것은 왜일까?

 

지난 3개월동안 600Km가 넘는 달리기와 100Km가 넘는 산행, X-Country를 하면서 준비했는데 ..... 큰 대회를 앞두고 나타나는 단순한 불안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몸상태가 부실한 것은 사실이다. 2월 중순부터 나타난 만성 피로증후군이 아직 가시지않고  있으니 ...... 왼쪽 발목부상으로 지난 두타, 청옥산 산행에서의 고행(苦行)이 생각나기도 하고 ......

 

1주일간 테이퍼링을 더 하고, 속도 욕심을 접어버리면 동아마라톤에서 편안하게 완주야 하지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근력운동 삼아 대간길 19Km를 걸어볼까? 야, 월파야 !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스피드는 잊는거야, 알았지? 그래, 버려. 버리자구, 그 넘의 시간 단축 욕심을 버리고, 아리랑 아리랑이나 불러보자구 !

 

욕심을 버리자구. 버리는 것만큼 더 큰 것을 얻으리니 ..... 그래! 아리랑을 부르며 대간길을 걸어보자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선 아리랑도 좋고,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도 좋으니 ..... 강릉 옥계를 지나는데 붉은 해가 동해에 떠오르고, 42번 국도의 벼랑을 올라 07시 38분, 백봉령에서 대간길에 접어든다.

 

 

이 잣나무 숲처럼 푸른마음으로, "빨리"라는 욕심을 버리고 ......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한번도 정선땅을 밟아 보지 않은 사람도 정선아리랑 한 구절 정도는 읊을 수 있다고 �던가?  동해(묵호, 북평)에서 그 정선의 아우라지로 넘어가는 고개마루가 백봉령이다. 백복령(白伏嶺), 백복령(白卜嶺), 백봉령(白鳳嶺)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어느 고개길이든 그기를 넘나들던 서민들의 애환이 다양하게 숨어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사연만큼이나 고개이름도 많은 것이 아닐까?

 

백봉령 주변은 이 고개의 이름만큼이나 어지러운 모습이다. 석회석 채광으로 인근 자병산(紫屛山, 872.5m)은 그 속살을 내놓고 널부러져 있고, 산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다보니 대간의 마루금 찾기도  혼란스럽다. 철탑에 붙은 번호를 따라 대간길을 찾아간다. 2년 남짓 대간을 걸어면서 이렇게 훼손된 곳은 처음이다. 사라져버린 마루금을 무슨 수로 다시 찾을 수 있으리?

 

저 아래, 정선 아우라지는 어떤 곳인가? 누구는 산자수려(山紫水麗)해 태고의 신비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 했지. 속을 들여다보면 궁벽한 산간의 고달프고 외로운 삶이 묻어나는 곳이 정선이요, 그기 두 갈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 아우라지다. 아우라지에서 한강으로 뗏목에 실어보낸 사랑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애닯기만하다. 금대봉 깊은 골짜기에서 시작한 골지천이 정선 아라리를 만나는 곳에는 이래저래 삶의 애환이 묻어있다. 그 사연을 누가 모두 아라리요?(알아주겠는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릿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올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의 고장 정선 안내비, 백봉령 마루턱

 

 

 (3) 임계 카르스트 지형

 

08시 52분, 생계령을 지난다. 대간길의 좌측으로 카르스트 지형을 보면서 대간길을 잇는다. 자연은 언제나 오묘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군데군데 움푹패인 카르스트가 점점 눈에 익숙해진다. 여기저기 카메라로 잡아보지만 썩 선명한 모습이 잡힐지는 의문이다. 이것도 집착인가?

 

물, 빛, 바람, 소리 ..... 이게 다 무엇인가? 스스로(自), 그러한(然). 바로 ‘자연(自然)’ 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보탬도, 덜어냄도, 덧붙임도, 떼어냄도 없는 .....  흐르는 물 썩지 않고, 빛 앞에 어둠이 사라지듯.....  어디에서나 두루 어김이 없는 .....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사시사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곳이 산이다. 

 

오늘은 그 산길에서 또 다른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움푹 들어간 돌리네(속칭 쇠곳), 소위 카르스트 지형은 보면 볼수록 특이하다. 석회암 지질이 빗물에 녹아서 움푹 파인 카르스트는 동굴처럼 깊은 곳도 있다.

 

임계 카르스트 지형, 교과서에도 등장했었지. 내용파악보다 달달 암기하기에 바빴던 그 시절, 그때는 카르스트의 의미도, 그 앞에 왜 "임계"라는 단어가 붙었는지도 생각할 틈이 없었지 ..... 중국 곤명 근처의 석림(石林)을 떠올리면서, 카르스트 지형이 빚어낸 두 갈래의 대간 길에 선다. 어느 길이 진짜 마루금인지?

 

자연의 섭리대로 살피면 확연하다. 두 갈래 길에 물채워 보면 어디로 흐를지 ...... 생계령 쪽이 고도가 낮으니 대간길이 분명히 드러나리라. 그래서 생계령은 대간 주능선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기에 그렇게 얽매일 필요야 있겠는가?  물이 지하로 모두 스며들었으니 물 건너지 않는 어느 능선을 걸어도 무슨 상관이랴?

 

자연(自然) 그대로, 걸림이 없는 그 길을 걸으면 그만일 뿐 .....

 

생계령을 지나 만나는 카르스트지형

 

 

 (4) 따뜻한 햇살에 퍼지는 사랑

 

09시 20분 노송지대를 지난다. 카메라를 꺼내 몇 커트를 잡아본다. 일기예보상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늘은 짙푸르기만하다. 하늘이 우리의 대간길을 돕는거겠지 ..... 사진을 찍고 922봉으로 향하는데 카메라 Case가 없다. 돌아와 길에서 찾아 챙긴다. 또, 내리막 길을 걷는데, 이번에는 한쪽 장갑이 없다. 다시 노송지대까지 돌아와 찾는다. 요즘 이렇게 정신이 깜빡깜빡하니 ......

 

그 사이 선두그룹은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묵묵히 922봉 오르막을 걷는데 숨이 헐떡인다. 그래도 중간의 멈춤이란 없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 다행히 922봉 정상에는 선두그룹이 기다리고 있어 갖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석병산을 굽어보기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922봉 가는 길의 노송지대

 

10시 37분, 908봉 헬기장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따뜻한 햇살이 한없이 내리쬐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두릅나무에서는 금새라도 새잎이 돋아날 것처럼 보인다. 오랫만에 여유로운 산행이다.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 꽃이 피어난다. 이것만으로도 봄이다.

 

봄볕을 쬐면서 봄 햇살이 주는 사랑의 의미를 끝없이 느낀다.  햇살처럼 무조건 아낌없이 주다보면 어느새 모든 것이 변하고, 자라고, 아름답게 열매맺는 것이 바로 사랑이란 사실을 생각하면서 .....

 

다음 산행에서는 촉촉히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풍요로움을 맛보고 싶다. 소리없이 내리는 봄비에 젖고 또 젖어보면 풍요로움이 무엇인지 정말 알 수 있다. 풍요롭다는 것은 내 마음이 마르지 않고 언제나 사랑으로 촉촉히 젖는 것이기에 ..... 

 

908봉 양지녘에서 꽃망울을 준비하는 두릅

 

 

 (5) 병풍바위 펼쳐진 석병산(石屛山)에서

 

석병산(石屛山, 1055.3m), 이름대로라면 돌 병풍으로 둘러쳐진 산이겠지? 산 정상에 오르기까자지 낮은 산에 가려 산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11시 52분, 석병산 정상에 오른다. 천길 낭떠러지에 선 기분이 묘하기는 하지만, 아직 석병산의 진면목을 느끼기에는 이르다.

 

정상으로 올라 왔던 길을 되돌아 두리봉 갈림길에 선다. 두리봉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깍아지른 절벽과 석병산의 일월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내려가니 석병산 서쪽면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 나오고 ..... 

 

이곳에 보는 석병산은 두 개의 암봉과 웅장한 암벽이 병풍을 친듯이 한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그제서야 석병산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 알 것같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하게 진면목을 드러내놓은 것이다. 전망대에서 석병산에 빼앗겼던 마음을 되돌리는데는 꽤나 시간이 걸린다. 자연에 취하고 빠지는 이러한 집착은 그리 나쁠것도 없지 싶다.

 

돌병풍을 두른듯한 석병산의 암봉

 

석병산((石屛山·)은 본래 그 동남쪽에 있는 자병산(紫屛山·)과 짝을 이룬 산 이름일텐데, 자병산의 병풍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석병산은 이제 짝잃은 외기러기 신세가 된 셈이다. 운률(韻律)이나 대구(對句)를 잃은 시(詩)가 이러할까?

 

석병산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山竹) 밭을 걸으면서도 훼손되고 사라진 자연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는다. 오늘따라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조릿대(山竹)의 푸르름이 더욱 돋보인다. 두리봉을 지나 삽당령으로 향하는 길가에도 산죽밭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석병산 전후의 산죽밭은 끝없이 펼쳐진다

 

 

 (6) 삽당령의 동동주 한 사발

 

13시 35분, 백봉령을 출발한지 6시간만에 동동주 한 사발을 기대하며 삽당령에 내려선다. 제법 따뜻한 날씨이지만, 삽당령은 아직은 겨울이다. 우리는 늘 마음 속에 봄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봄, 봄중에서도 겨울의 끝자락에 매달려 바락바락 떼를 쓰며 기어오르는 초봄은 늘 간절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분출의 욕망을 꽃눈 속에 숨기고 겨우내 움츠렸다가 벼락처럼 터뜨리는 꽃망울이 있고, 때로는 갑자기 찾아온 매서운 칼바람에 얼어터지고 상처받는 여린 잎의 안쓰러움이 있기에, 초봄에는 더욱 간절함이 배어나지 싶다.

 

 

오늘도 이런 간절함을 가슴에 안고 산길 19Km를 걸었다. 이 성부 시인이 산길을 걸으며 했던 생각을 곱씹기도 하고, 맥스 어만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 때로는 어제  최단시간에 40만 고객을 확보하고, 아직은 초봄을 맞는 여린 잎같이 시작하는 내 일상의 비지니스를 생각하면서 ..... 내게 주어진 업이니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 꼭 이 일을 성공시키고 싶다.

 

                   저를 낮추며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솟구치는 힘 더 많이 쌓인다는 것을/

                   먼발치로 보며/

                   새삼 나도 고개 끄덕이며 간다

                                               - 이 성부 시인의 '저를 낮추며 가는 산'에서

 

당신의 소망이 무엇이든, 시끄럽고 혼란한 삶 속에서도 영혼의 평화를 간직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노라면 서로 속이고 힘들고 꿈이 깨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니까. 그래서 더욱 힘을 내어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을 힘차게 부르면서 힘을 내어 보는거야. 강원도 토산(土産) 갓김치 빈대떡에 찰옥수수 동동주 한 사발을 걸쭉하게 걸치고 힘내어 일상으로 돌아가는거야.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홀로아리랑 - 서유석


                             저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 금강산 맑은물은 동해로 흐르고

                                                        /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타고 떠나라

                             오늘도 거센바람 불어오겠지

                                         / 설악산 맑은물도 동해가는데

                                                        / 한라산 제주에서 배타고 간다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 가다가 홀로섬에 닻을 내리고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해보자

 

 

 

 [에필로그]

 

산행보다 더 재미있었던 주문진 바닷가의 뒷풀이 이야기와  불과 5분 차이로 대간길에 함께하지 못했던 모 팀장님의 아쉬운 이야기, 그 위로연 이야기는 마음 속에 묻어두었다가 다음 대간길에서 슬쩍슬쩍 꺼내어 봄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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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산행기록]

 

  04:05  서울 대치동역 출발

 

  06:10  강릉 휴게소 도착

  06:40  강릉휴게소 출발

  07:05  동해고속도로 동해IC

  07:35  백봉령 도착

 

  07:38  백봉령(780m) 출발

  08:10  45번 철탑

  08:52  생계령

  09:05  서대굴 안내판

  09:10  829봉

  09:20  노송지대

 

  09:40  922봉(5분 휴식) - 2개의 대간길 합류지점

  10:07  434 삼각점(900봉, 10분 휴식및 간식) 

  10:27  석화동굴 갈림길 

  10:37  908봉(헬기장, 식사및 휴식 50분)

  11:27  908봉 출발

 

  11:52  석병산(1055.3m, 5분 휴식)

  12:13  헬기장

  12:27  두리봉(1033m)

  13:35  삽당령(680m) 도착

 

  14:30  삽당령 출발

  15:10  주문진 도착

  17:32  주문진 출발

  17:45  동해고속도로 주문진IC

  20:40  서울 대치동 도착